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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이만희 사후 시나리오
    탁지일교수(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   만약 이만희가 사망한다면, 신천지는 어떻게 될까?   1984년 설립된 신천지는 2000년 이후 모략(거짓말) 포교로 급성장했지만, 최근 발생한 코로나19의 감염 확산과 방역혼란의 원인 제공자로 국내외에 노출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과연 이만희 사후 신천지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한국기독교 이단운동은 일제강점기 후반에 서북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기 시작해, 한국전쟁과 함께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군사정권 하에서 반공, 승공, 멸공 운동으로 ‘성장’한 후, 오늘날 다문화사회에서 친사회적 활동을 매개로 ‘정착’한 양상을 보여준다.   ‘교주에 대한 신격화’와 ‘비성경적인 교리’를 특징으로 하는 이단들은 교주가 사망한 후 다양한 진로를 보여준다. ‘돈’과 ‘충성도 높은 신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설령 교주가 사망하더라도 쉽게 몰락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교리’와 ‘조직’이 안정적인 이단일수록, 설령 교주가 사망하더라도 쉽게 와해되지는 않는다.   신천지는 돈도 많고, 나름 체계적인 교리와 조직도 있다.   특히 충성도 높은 신도들도 있어, 급격하기보다 점진적인 몰락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이만희 사후 신천지는 어떻게 될까?   역사적 사례들을 보면, 이단들은 교주가 사망한 후 다음과 같은 경우의 수들이 존재했던 것을 볼 수 있다.     Option 1 ‘와해’   첫째, 조직이 급격히 ‘와해’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가 박태선의 전도관이다. 하나님으로 따르던 교주 박태선(1917~1990)이 사망하고 난 후, 신도들이 다수 떠나면서,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소사, 덕소, 기장 등지에 신앙촌을 세우고, 사업적으로도 성공했던 전도관은 박태선 사후 서서히 와해의 길을 걸었다. 이후 조희성(1931~2004)의 영생교 등의 아류 분파들의 등장했고, 최근에는 천부교를 통한 조직 재건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보다는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Option 2 ‘분란’   둘째, 조직 내부에서 ‘분란’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통일교의 사례이다. 재림주로 신격화되던 문선명(1920~2012)이 사망한 후, 부인 한학자와 친아들들인 문현진, 문국진, 문형진의 모자(母子) 간, 형제(兄弟) 간 싸움이 본격화되었다. 이들의 싸움은 겉으로는 문선명의 정통성을 이어받기 위한 교리적 논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문선명의 후계자가 돈도 다 차지하는 기업형 이단종교의 특징을 고려하면, 소위 ‘참 가정’ 안에서 양보 없는 돈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분란의 끝은 보이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초종교운동을 지향하는 큰아들 문현진과 통일교의 재건을 꿈꾸는 막내아들 문형진, 그리고 본부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한학자 계열로의 분파 형성과 독자적인 세력 확장으로 나타날 조짐이다.     Option 3 ‘성장’   셋째, 교주 사후 조직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경우이다. 흔하지 않은 사례가 하나님의교회에서 나타난다.   교주 안상홍(1918~1985)이 사망한 후, 분란과 분파도 있었지만, 후계자로 등장한 장길자와 김주철을 중심으로 급격한 세력 확장이 이루어졌다.   현재 규모로는 국내 최대 이단으로 분류될 정도이다.   국내외에서도 흔하지 않은 경우로, 안정적인 후계구도가 정착했다는 측면에서는 종교사회학적으로는 안정기로 들어간 것은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 망령되이 일컫는 이단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전략적인 대처가 필요한 이유이다.   물론 교회역사는 아무리 규모가 큰 이단이라 하더라도 순식간에 몰락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 다음세대들에게 신천지와 같은 이단문제의 아픔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교회 대처를 위한 한국교회의 조직적이고 선제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Option 4 ‘분파’   넷째, 가장 일반적인 현상으로 ‘분파’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대부분의 한국이단들이 이 길을 걸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급격히 혹은 점진적으로 소멸해갔다. 분파한 단체들 중 몇몇은 선임 교주를 성공적으로 벤치마킹해 스스로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고, 새로운 신격화에 성공했다. 문선명을 ‘실패한 세례요한’으로 폄하하면서 등장한 정명석의 JMS, 그리고 유재열을 ‘배도한 세례요한’으로 격하시키면서 등장한 이만희의 신천지 등이 그 사례이다.   즉 한때는 열렬한 ‘이단 신도’였던 누군가가, 그 숭배의 대상을 폄하하고 배신한 후, 스스로가 ‘이단 교주’로 등장하는 패턴을 한국이단운동사는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교주에 대한 복종’에서 ‘교리에 대한 신념’으로   특히 ‘분파’는 교주의 권위에 균열이 가는 순간에 시작된다. 기자회견을 통해 노출된 이만희의 어눌한 모습과 불안정한 위기관리 능력은 신천지 신도들이 ‘교주(prophet)’로부터 ‘교리(promise)’로 믿음의 중심을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 있다.   즉 기존의 교주에 대한 ‘복종과 숭배’가 교리에 대한 ‘신념과 확신’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심지어 이만희와 신천지 조직의 통제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소 부적절한 비교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IS 조직의 통제 하에 있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외로운 늑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신천지 유사 교리를 내세운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 의해 조직화될 때, 이만희의 뒤를 잇는 하나의 분파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설령 이만희가 사망하더라도, 그의 죽음을 신도들이 순순히 수용하기는 어렵다. "불로불사"를 주장했던 교주의 죽음을 받아드리는 것은 곧 자신의 선택이 실패했음을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택을 반대했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교주의 죽음을 미화하거나 신격화하는 단계로 쉽게 넘어가게 된다. 그렇기에 교주의 사망이나 시한부 종말론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단들이 건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적 인지부조화 현상인 것이다.     능동방어체계 구축의 필요성   과연 이만희 사후 신천지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만약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게 된다면, 포스트 이만희를 노리는 넘버2들의 경쟁을 통해 제2의 이만희가 등장해 조직을 통제할 것이다. 또한 코로나19에 대한 위기 대응에 실패할 경우에는, 신도들의 이탈, 조직의 분란과 분파를 통한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천지의 ‘돈’은 이들의 몰락을 다소 더디게 만들 것이고, ‘돈과 조직과 신도’를 차지하기 위한 넘버2들의 피할 수 없는 다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주가 사망해도, 이단은 지속된다."   이제는 코로나19와 신천지 같은 외적 변수에 일희일비하거나, 혹은 코로나19를 악화시킨 신천지에 대한 비판에만 화력을 집중하기보다는 교회 스스로의 면역 기능을 강화하고, 교회 안팎의 바이러스 공격에 대비한 능동적인 방어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현대종교(hdjongk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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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3
  • [복지] 사고의 틀을 바꾸는 융합학문과 공유의 가치
       김성철 교수( 백석대 보건복지대학원) .      미래가 자신을 만들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고통이지만,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에게 미래는 행복이 된다고 본다.   비전을 세워서 자그마하게라도 승리를 경험한 사람은 결코 돈만 좇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비전을 완수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미래를 내가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경제적으로도 훨씬 안정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인다.   페이스북 최고 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는 2012년 하버드 MBA 졸업식에서 “로켓에 올라타라” 강조했다. 당장 직급이 낮고 보잘것없더라도 일단 로켓에 올라타면 나중에 회사가 로켓처럼 빠르게 성장할 때 함께 성장하게 된다는 뜻이다.   ‘시대의 가치 있는 소명과 비전’ 이야말로 우리가 미래에 가장 빠르게 가장 높이 오를 수 있게 해주는 로켓이다.   흔히 가치와 비전을 얘기하면, 먼저 경제적 여유를 확보한 다음에나 생각할 문제라거나 또는 평생 가난하게 헌신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미래 통찰을 바탕으로 나만의 가치에 근거해서 세운 올바른 비전은, 비록 처음에는 불확실하고 작아 보일지라도 미래의 변화가 하나하나 눈앞의 현실로 나타날수록 힘이 세지고 더 커지면서, 나와 가족과 이웃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요즘 대한민국 사람의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는 최대의 고민은 일자리 걱정인 듯하다.   2016년 1월, 다보스포럼은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통해 “2020년까지 앞으로 5년 동안 인공지능, 로봇, 생명공학 등 미래 기술의 영향으로 일자리 500만 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금 2020년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충격적 전망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가 최소 500만 개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다.   왜 그런가?   인류 역사에서 여러 차례 혁명적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산업이 등장했지만 일자리가 줄어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때마다 과거의 직업이 사라졌지만, 결국 그 빈자리를 새로운 직업이 만들어져 채웠다.   구체적으로 700만 개의 기존 일자리가 없어지고, 새로운 일자리 200만 개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수치를 정확히 해석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가진 최고의 지식과 정보를 기준으로 볼 때 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은 거의 확실하며, 또한 미래에 생길 새로운 일자리를 200만 개까지는 거의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 대해 새로운 일자리 500만 개가 어떤 타이밍에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등장할지는 알기 어려우니, 그 불확실성에 대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 변화의 불확실성이 두려워서 확실한 200만 개의 좁은 문 앞에 줄 서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500만 개의 미래 가능성에 도전해서 자신만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가?    미래의 준비는 사고의 틀을 바꾸는 융합학문과 공유의 가치가 필요한 시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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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
    2020-03-05
  • [선교] 주님보다 더 큰 위로자는 없다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2)   양의 운명은 오직 목자의 손에 달려있다. 주님이 나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평생 사는 날 동안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그분 안에 안식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주님은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나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   주님께서 다 보장하신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다   솔직히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두려워서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때마다 걸어갈 힘을 주시고 넘어지면 일으켜 주시고 혼자 못하면 돕는 손길을 붙여주시는 주님을 믿으면 갈 수 있다.   다윗은 일평생 아무도 그와 함께 한 사람이 없었다. 친구도 그를 배신했다. 죽음에 내몰려 쫓겨 다니며 광야 한 귀퉁이라도 자기 땅 하나가 없었다. 어떤 때는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도망했고 내일을 보장하고 산 날이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순간 그는 말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   메마른 광야 여기저기로 피해 다니며 주리고 목마를 때도 그는 고백했다.   ‘그는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셨다. 나는 목마르지 않았다.’   혹독한 과정을 지났지만 주님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지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죽을 것 같은 외로운 순간에, 두려움이 엄습하는 밤을 지나는 동안 두려움도 사실이지만, 목마름도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더한 사실은 주님이 더 큰 위로로 함께 하시는 것이었다. 그 목마르고 지친 순간에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도 다 보장되었다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예수님 피 값 주고 사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주님이 어찌 모른다 하시겠는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우리의 불신을 책망하면서 도전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사시며 주리고, 아프고, 울기도 하셨다. 지독한 배신에 시달리기도 하셨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겪으셨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주님은 우리를 너무 잘 아신다.   암에 걸렸던 사람끼리는 긴 얘기가 필요 없다. 동병상련이라고, 아파본 사람끼리는 안다. 서러운 일을 당해본 사람끼리는 서러움을 공유하는데 긴 말이 필요치 않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살아보신 주님이 우리의 영원한 공급자가 되셔서 ‘너 염려하지 마라. 근심하지 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해. 그러면 이 모든 것은 내가 너에게 공급해 주겠노라.’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은 최선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에 감사한다. 주님의 허락하심에는 부족함이 없다.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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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20-03-04
  • [신앙] 전광훈 목사 구속과 기독교인의 고민
        최근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슈는 ‘전광훈 목사’다.   주사파와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자세로 현 정부를 지탄하며 사람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전광훈 목사 주장)’에 따라서 시위와 예배가 합쳐진 반(反)정부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광훈 목사의 반정부운동은 일반 국민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사안 중 하나다.    기독교 안에서도 전광훈 목사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져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전광훈 목사의 말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현재 구속된 상태에서 법의 처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며 언젠가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그의 주장대로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광훈 목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현 정부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근거자료들이 많은 이들을 설득하지는 못하지만, 북한 인권에 대한 현 정부의 정책이 약한 것은 사실인 듯 보인다.   대한민국은 좋은 관계를 통한 평화통일을 해야 하지만, 북한의 처참한 인권상황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예를 들면, 평화를 위한 김정은과의 회담도 좋지만, 지금도 그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 많은 이들의 실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의 공산주의화를 막기 위해서만 전광훈 목사를 통해서 일하고 계시는 것일까?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거의 50%에 육박한다. 이 지지율은 어떤 이슈가 있다 하더라도 거의 유지가 되고 있다. 그만큼 많은 국민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통한 촛불혁명과 박근혜 탄핵으로 세워졌다.    즉, 이전 정부에 실망한 많은 국민들이 대안으로 현 정부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확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현 정부는 단순히 진보와 보수 이념의 정치논리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에서 세워진 것이다.   현 정부가 잘못된 큰 이슈를 만들지 않는다면, 이 지지율은 계속될 것이다.    현재 각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현 정부의 잘못된 면을 부각시키는 이슈들을 얘기하지만,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현재 야당들의 지지율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떠한 이슈를 만들고, 어떠한 통합을 해도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고 있다.   현 정부를 견제할 대안이 크게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견제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현 정부의 지지율 속에는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들의 지지도 포함되어 있다.   현 정부에 대한 많은 기독교인들의 지지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견제가 없는 현 정부의 높은 지지율은 앞으로 반기독교적인 정책들을 불러오게 될 수 있다. 현 정부안에도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그들이 정책을 이끌지는 못한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세계주의와 종교다원주의 속에서 기독교인들의 아킬레스건처럼 비추어지는 동성애 문제등과 같은 반기독교정책은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진 현 정부의 정책을 통해서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현재도 일부 그런 조짐이 있다.   현 정부는 기독교 정부가 아니다. 모두를 위한 정부이다. 높은 지지율 속에서 견제가 없다면 언제든지 반기독교적인 정책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국민들은 상관이 없지만, 성경말씀을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모두를 위한 정책이 반기독교적 정책이 될 수 있다.    법안에서 이루어지는 반기독교적 정책은 미국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면 현 정부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히 현 정부에 대한 지지와 전광훈 목사에 대한 비판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견제를 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아닌 기독교인들이 먼저 대안을 세워야 한다. 이는 한국교회와 다음 세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공산주의보다 더 경계해야 할 세계주의, 종교다원주의 등의 반기독교정책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전광훈 목사를 드러내서 깨닫게 하려는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지 않을까.   한국교회가 핍박받지 않도록 현 정부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준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세상의 선과 하나님의 선은 차이가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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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
    2020-03-02
  • [신학] 신천지 이후, 한국교회의 역할
          최근 코로나19로 인해서 신천지가 많은 이슈가 되고 있다. 그동안의 신천지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현재 ‘신천지’는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과거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구원파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신천지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신천지가 없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돈은 힘이 있다.   이단 논란을 일으키는 단체들이 생명력을 갖는 건 돈 때문이다. 교주 이만희가 죽게 된다 해도, 상위의 소수 지도부가 그 돈으로 ‘사업’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신천지가 이번 일로 기세가 약해지면, 신천지 안의 많은 이탈자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과연 신천지에서 나온 사람들이 되돌아갈 수 있는 교회가 한국에 몇 군데나 있을까?   되돌아온 그들을 의심의 눈초리가 아닌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교회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를 두고 한국교회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들을 품지 못하면, 그들은 교회를 완전히 떠나거나 새로운 이단들에게 갈 것이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신학
    2020-03-02
  • [신학] 데자뷰, 세월호·구원파 vs. 코로나·신천지
    탁지일 교수(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       세월호 그리고 구원파의 건재!    마치 2014년으로 시계가 되돌아간 듯하다. 세월호 사건과 함께 구원파의 등장, 그리고 구원파에 대한 동시다발적 이슈화와 사회적 비판, 그리고 용두사미. 이후 구원파는 수많은 언론들을 대상으로 정정·반론보도를 신청했고, 언론들은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쉽게 이를 받아드렸다. 그 후 결국 구원파는 대부분의 법적 소송들을 승소해왔고, 세월호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코로나 그리고 신천지의 위기?   오늘 코로나의 확산과 함께 신천지 이슈가 언론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신천지의 몰락을 앞당기기 위한, 정확하고 공신력 있는 비판과 대안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 다시 시행착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부정확한 비판과 감정적인 접근은 언제든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천지의 교리적·조직적 특징으로 인해 코로나의 대규모 확산이 발생했다는 이유를 사회에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이미 신천지가 교회에 침투해 문제를 야기했던 것처럼, 사회에도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공권력과 언론의 한계   공권력의 한계는 문제가 발생해야 개입할 수 있고, 언론의 한계도 문제가 발생해야 공론화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신천지의 실체를 사회에 올바르게 알리고, 추가적인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편 지금 신천지를 맹공하는 언론들 중에는 신천지에 대한 (광고도 아닌) 긍정적인 기사들을 작성해 수차례 보도했으며, 이를 통해 국민의 여론을 호도했던 언론들도 있다는 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언론의 사명은 ‘시청률’이 아니라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신천지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번 사태에 대한 신천지의 기자회견에서, 이 모든 일을 “마귀의 짓”으로 돌리지 말고,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통하는 어설픈 변명이나 억울함의 호소보다는, 도의적인 책임과 지역전파 차단을 위한 노력을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2019년 그들 스스로 밝힌 202,899명의 신천지 신도들에게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대구교회에 모인 신도들이 아니라 다대오지파 12,587명 이상의 신도들의 명단 제공과 함께,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 수백 명의 신도들이 스스로 나타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지금까지 신천지가 소위 “개종교육”을 막기 위해 신도들의 위치를 추적하고, 동향을 주도면밀하게 파악했던 탁월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2014년 <세월호와 구원파>의 아픔과 실수를, 2020년 <코로나와 신천지> 좌절과 분노 속에서,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신학
    2020-02-26
  • [복지] 비전과 설득을 통한 프로세스 관리의 복지경영
    김성철 교수(백석대 보건복지대학원)       카이 엥겔은 <혁신의 대가>에서 최고혁신기업의 선정은 2003년 독일에서 시작되었으며 AT커니는 독일의 경제지 《비르트샤프츠보허》와 함께, 제품과 재무 측면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두는 것은 물론 마치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계처럼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조직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기업을 선정했으며 ‘혁신 기계’ 장치와 그 조작법을 제시하고 있다.   혁신은 기법이 아니라 역량이라고 했다.    프로세스란 기업이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즉 수익성 높은 성장(profitable growth)을 수십 년간 가능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고혁신기업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혁신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그것이 기업 프로세스와 통합되어 있다. 또한 늘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변화에 정신이 팔려 시야가 좁아지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아무리 성공적인 혁신이라도 언젠가는 유효기간이 끝나게 마련이다. 이를 잘 아는 체베는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다음 사업기회는 휴대용 기기에서 생길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롤프 홀랜더 체베 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혁신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의 5퍼센트는 분석이고, 나머지 95퍼센트는 신속하면서도 집중적인 실행입니다. 우리 회사가 보유한 자원은 비교적 제한적이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은 성장 분야를 찾아 투자해야 합니다. 핵심 성장 분야에 집중하고 혁신 추구 분야를 정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절한 혁신 전략을 수립할 때 최고혁신기업들은 우선 시장과 기술, 제품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공을 들이는데,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많은 자금 투자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적절한 혁신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다.   그리고 핵심 의사결정권자들의 두뇌 속에서 적절한 혁신 전략을 수립한 다음에는 서류가방(portfolio)에 집어넣을 만한 아이디어를 수집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서류가방을 ‘검색란 포트폴리오(search field portfolio)’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혁신 흐름의 원천이다.   최고혁신기업의 철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시작점도 도착점도 시장’이다.   디지털 사진 시대를 내다보고 대비한 체베의 사례에서 보듯 혁신의 시작은 고객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서 비롯된다.    모든 상품화 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협업(collaboration)이다.   이는 다기능 팀 협력을 의미한다.   최고혁신기업의 혁신 경영은 시장에서 시작해 시장에서 끝이 난다(from market to market).   혁신기업의 구조는 기업 조직도로 나타낼 수 없고, 최고혁신기업의 진짜 특징은 적극적인 혁신 관리다.   여기에서는 최고혁신기업들이 혁신적인 조직의 토대를 어떻게 구축하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문화는 조직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의 총합으로, 최고혁신기업들은 혁신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기업가정신을 갖춘 직원들이 인정받고 뜻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또 최고혁신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창의성을 발휘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자유를 일관성 있게 제공한다.   직원들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도록 독립성을 부여하는 데는 위험이 따르지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는 기업이 기꺼이 감당한다.   아울러 최고혁신기업들은 자사의 미래와 관련해 어떤 종류의 위험을 감수해도 되는지 직원들에게 알리며, 실패했을 때에도 직원들이 승진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한다.   기업들은 종종 새로운 아이디어를 평가해 계속 지원할지 아니면 폐기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혁신의 토대는 공정 관리(process management), 다시 말해 팩트다.   여기서 팩트란 혁신 생애주기, 즉 통찰에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아이디어에서 구상한 콘셉트를 기반으로 제품을 개발해 출시하며, 출시한 제품이 차기 혁신으로 단종되는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가리킨다.   최고혁신기업들은 프로세스 관리를 역동적인 혁신 문화의 중심으로 삼는다.   즉, 공동의 비전을 설득력 있게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프로세스 관리가 필요하며, 이러한 작업은 혁신 문화에 대한 감정을 고양시키며 복지경영적인 발전에 기여 한다고 볼 수 있다.    
    • 오피니언
    • 복지
    2020-02-19
  • ​[선교] 이슬람전도사 박동신 이맘을 보면서
    무슬림선교훈련원(원장 이만석)         최근에 매스컴에 한국인 무슬림 박동신씨의 기사가 종종 소개되는 것을 보게 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펜을 들게 되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유튜브 방송, 아랍어 교실, 모스크 이맘 활동 등을 통해서 한국 내 이슬람 변증과 확산을 위해서 매우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었다.   매스컴에 소개된 본인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는 안식교 신자였고 어머니는 장로교 신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면서도 기독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이슬람에 눈을 돌려 2009년 12월30일 개종하고 무슬림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년간 국내에 머물다가 해외로 나가 터키의 이슬람 사회를 2년간 체험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3년을 머물면서 아랍어를 연수했고 요르단에서 3년을 머물면서 아랍어 8단계 과정을 수료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1년간 머물면서 알아즈하르 대학교 “알루와끄 알아즈하리(이슬람법학)를 수강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9년 한국에 와서 한국이슬람교평화회를 만들고 인천이슬람사원의 이맘이 되어 열심히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처음 이슬람으로 개종 후 1년도 안 되어 꾸란 낭송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인터뷰한 기사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한국의 선교사들도 어렵다고 하는 아랍어를 잘 배워서 아랍어로 설교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대단한 열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슬람을 영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인터넷과 동영상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젊은이의 특징을 살려서 한국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포교하는 무슬림 중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확실히 한국의 무슬림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로 생각되겠지만 이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사실 개인의 사생활 문제를 제 3자가 들먹이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는 이미 종교인, 방송인, 언론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공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쓰는 이유는 첫째는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속을 것 같은 염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동분서주하는 그 똑똑한 청년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이다.   그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공공연히 매스컴을 통해 홍보하면서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만일 어떤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하면서 방송을 통해서 기독교가 평화의 종교라고 강변하고 교회를 개척했다면 이슬람권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까를 상상해 보자.   당장에 그를 죽여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고 친척과 이웃들이 가문의 수치를 제거하기 위해서 부모의 손으로 그를 죽여야 한다는 압력이 끊임없이 들어올 것이다. 이는 무모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며 이와 유사한 명예살인의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것만 봐도 과연 어떤 것이 정말 평화의 종교인지를 독자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유능한 청년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속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가 스스로 밝힌 자신의 이력을 보면 아랍권에서 여러 해 살았지만 대학에서 이슬람의 법학을 공부했다고 하는 이집트에서는 1년 밖에 살지 않았다고 한다. 나머지는 아랍어를 배웠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알 아즈하르 대학은 이슬람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학 중의 하나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거기에 이슬람법학을 1년 만에 마치는 과정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를 못했다.   그가 수료했다고 하는 “루와끄 알 아즈하리”에 대해 이집트 아랍신문을 찾아보니 알 아즈하르 대학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세미나 같은 과정으로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이슬람 소개와 미심쩍은 부분을 변증해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으며, 매주 한 강의 씩 2개월 과정으로 2016년 말에 생긴 것”으로 게재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홍보용으로 미화된 이슬람만을 배웠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알 아즈하르 대학에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배웠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을 통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알 아즈하르 대학에서 이슬람 율법을 전공하려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알아즈하르 부설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알 아즈하르 대학에서 이슬람율법을 전공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알 아즈하르 대학을 졸업하면 이집트 정부 소속의 이맘이 되어 특별한 복장을 입을 수 있는 자격을 준다고 한다. 만일 알 아즈하르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그 복장을 입고 행세한다면 벌금을 물리는 정도가 아니라 체포해서 투옥시킬 정도로 철저히 통제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그 복장을 입고 설교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보고 이집트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경찰도 아닌데 경찰복장을 하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복장을 가지고 문제 삼는 사람은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했거나, 이집트 경찰력이 미치지 않는 한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누가 지적해도 처벌할 법이 없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했거나, 또는 알 아즈하르 대학이나 이집트 정부로부터 특별 허락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 점에 대해서 해명을 하지 않으니 고개가 갸우뚱할 뿐이다.   매스컴에 의하면 이슬람의 이맘이란 기독교의 목사나 천주교의 신부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목사나 신부는 최소한 교단 신학과정을 졸업해야 하지만 이맘은 그런 조건이 없다.   이맘이란 “앞에서 이슬람 식으로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모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꾸란을 잘 외우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굳이 학위나 졸업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무슬림 남자라면 누구든지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단 7구절로 된 꾸란 1장을 아랍어로 외우면서 이슬람식 기도하는 법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가 이맘 노릇을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알 아즈하르 대학의 특정 복장을 했다는 것이 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가 정식으로 이슬람율법의 전과정을 이수한 것은 아니고 홍보용 세미나에 참석한 정도라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홈페이지(islamkorea.com)에 보면 아랍어로 된 여러 가지 증서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부분 아랍어 과정 등록증이나 학생증 이며 알아즈하르 대학에서 이슬람율법(샤리아)과정을 수료했다는 증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은 커녕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어도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모스크도 세울 수 있고 이맘 역할도 할 수 있으므로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더구나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아랍어로 설교가 가능할 정도로 잘 준비되었으니 이점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홈페이지에 첫 장면에 보면 인천평화성원의 내부를 보여주는데 아랍어와 영어와 한국어의 3개 언어로 이슬람의 신앙고백을 적어 놓았다.   그 내용이 전부 서로 다른 것을 보고 그가 정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랍어의 내용은 “자비롭고 자애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나는 알라가 한 분이며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으며 그분은 동반자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분의 종이며 메신저라는 것을 증언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영어는 “알라 외에는 경배 받을만한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분의 메신저입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한국어로는 “하나님 외에는 경배 받을 존재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분의 마지막 사도입니다”라고 씌어있었다.   아랍어와 영어에 “알라”로 표기된 것을 한국어로는 “하나님”으로 번역했다.   알라(Allah)는 아라비아의 메카 지역에서 숭배를 받던 신의 고유명사다. 기독교의 하나님의 고유명사는 여호와이며 이 두 신은 전혀 다른 신이다.   말레이시아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이슬람 외의 종교에서 신을 “알라”라고 표현하는 것을 금하고 그렇게 번역된 성경을 압수한 사례를 보면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newsis.com 2016.12.28.)   또한 “마지막 사도”라는 말은 아랍어나 영어에 없는 내용이다. 물론 이슬람 교리에 의하면 무함마드가 마지막 사도라고 주장하지만, “마지막 사도”라는 말이 중요해서 꼭 쓰고 싶었다면 영어와 아랍어에도 삽입했더라면 그런 의심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가 평화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 홈페이지에 보면 “한국이슬람교평화회 인천평화성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평화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사용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정식으로 이슬람을 공부하고 학위도 취득해서 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속이는 소위 이슬람 학자들 혹은 성직자들이 있고 둘째는 꾸란도 모르고 이슬람 교리도 몰라서 귀에 들리는 대로 속고 있는 사람들이다.   박동신 씨는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슬람 관련 학위를 취득한 일도 없고 인터뷰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알면서 속이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남에게 이슬람을 가르치는 사람은 최소한 취소(Mansukh)교리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취소교리란 “ 꾸란의 이전 계시와 나중 계시가 상호 모순이 된다면, 나중 계시에 의해서 이전 계시는 자동으로 취소되고 더 나은 구절로 대체된다는 것이다.(꾸란2:106) 알 아즈하르 대학뿐 아니라 어떤 이슬람 학자라도 외국인들에게 이슬람을 소개하고 변증하는 정도의 세미나에서는 절대로 이슬람의 취소교리(Mansukh)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이슬람의 역사에 의하면 네 번째 칼리프였던 알리(Ali)는 “이슬람의 취소교리를 모르면서 꾸란을 가르치는 자는 자신도 망하고 다른 사람들도 망하게 하는 자다.”고 했다고 한다.(Ibn al Arabi al Maliki, Al-nasikh wal-mansukh fi al Quran al karim,Dar al Kotob al Ilmiyah, 2010, introduction)   박씨가 즐겨 인용하는 “종교는 강제로 하지 말지니라(꾸란2:256)”는 구절은 이미 취소되었고, “다신교도들은 어디서 만나든지 그 자리에서 죽이라(꾸란9:5)”는 구절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이슬람학자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몰라서 속고 있는 것이다.   열심은 있으나 그 열심이 바른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일단 숨을 고르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아랍지역에서 자란 청년 이상의 성인이라면 “Safk Dimaa al Kufar halal”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 뜻은 “비무슬림의 피를 흘리는 것은 할랄(허락된 것, 합법적인 것)이니라.”는 말이다.   모든 아랍권 무슬림이 알고는 있으나 실천을 안 할 뿐이다. 진정한 무슬림은 “생명과 재산을 바쳐 지하드(알라를 위한 전쟁)하는 자”(꾸란49:15)라고 꾸란은 말하고 있다.   평화를 말하는 무슬림은 꾸란에 의하면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다. 싸움은 무슬림의 의무다.(꾸란2;216) 세상 종교가 이슬람으로 통일될 때까지 (무슬림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안 남을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라는 것이 꾸란의 가르침이다.(꾸란8:39)   이슬람에는 “위험하다고 느낄 때는 거짓말을 허용하는 타끼야(Taqiya)라는 교리”가 있다.(꾸란2:225, 꾸란3:28)   위험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이슬람 포교에 유익하다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꾸란을 한글로 번역할 때도 양심의 가책 없이 아랍어 본문과 전혀 다르게 미화시켜 번역한 수많은 구절들을 필자는 알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책을 120권이나 쓴 옥스퍼드 대학교 학술회원인 “유수프 알 가라다위”는 “배교자를 죽이라는 율법이 없었다면 이슬람은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b3EcyIb_jfY)   한 때 이라크와 시리아의 1/3까지 점령했었던, 가장 잔인한 이슬람무장단체로 유명했던 IS의 창시자 아부바크르 알바그다디는 무식한 광신자가 아니라 박사(Ph.D)학위를 가진 이슬람 학자였다.   그는 아랍어가 모국어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숨기고 싶은 자료도 다 알고 있었다.   박씨가 유수프 알 가라다위나 아부바크르 알 바그다디보다 이슬람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탕자처럼 방황하지 말고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그동안 배웠던 아랍어가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훌륭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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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20-02-18
  • [선교] 누군가 잊혀진 영혼을 비추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바로 강화도로 들어왔습니다. 방에 앉아서 불을 끄고 건너편을 바라보았습니다. 빛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어두움이 건너편에 깔려 있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한국교회가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 지하 성도 이야기를 생전 처음 들었다는군요. 그럴 수가… 북한에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있음을 몰랐다네요. 그들을 위해 기도할 제목을 생각해 본 일도 없다네요.   자신들의 필요는 수십 년 동안 아뢰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북한 땅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통일이 오면 무슨 사업을 할지는 생각해 봤답니다. 토목공사, 아파트 건축 등등이 통일 이후의 관심거리라는군요.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은 하는데, 다른 곳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흑인이나 백인 가운데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고, 중국이나 일본에도 제 형제가 있습니다. 유대인 중에도 제 형제가 있습니다.   당연히 북한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 있습니다. 용서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들이 그들 중에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형제입니다. 그들이 어려워하고 괴로움당하고 있는 걸 몰랐다고 말하시겠습니까?   지난 35년 동안 중국으로 북한으로 몽골과 러시아로 중동으로 다니며 주님께 구했습니다.‘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같이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세요!’하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아직도 북녘 땅에 하나님의 백성, 우리의 형제들이 죽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북녘 땅에 복음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그러나 그 일을 오히려 기뻐하는 주의 백성들이 그 땅에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손에 성경 한 권을 들려 주기 원하는 이들을 찾습니다. 어두운 저 땅에 잊혀진 하나님의 백성을 형제로 알고 기도할 분들을 찾습니다.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 주십시오. 저 백성들을 위해 여러분이 무엇을 할지를 여쭤 주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찔리는 대로 행하십시오.   통일 후에 무슨 일을 하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나님께 내가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 주십시오. 우리 북한 사역자들의 손에 무엇이 들려져야 하는지를 물어주십시오.   그리고 행하십시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여러분이 잊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며 뛰고 있습니다. 모퉁이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하나님께 여쭤보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 백성을 놓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일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 기쁨이 될 것입니다.   저 건너편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잊혀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이 밝게 비춰지도록 일하고 있습니다.     CORNERSTONE MINISTRIES INTERNATIONAL  모퉁이돌선교회 [2020 . 2 카타콤 소식]  무익한 종 이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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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3
  • [신앙] 죽는 그리스도인
        자기 부인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죽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독교인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오라 했다.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것이다.   실제 삶 속에서 죽을 수도 있고, 내 안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수도 있다.   그것을 통해서 믿음 안에서 성령의 역사를 통한 강한 하나님의 이끄심과 그것을 통한 거듭나는 자신을 발견해가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종교 안에 갇혀버린 교회   세상에서 기독교는 종교 중에 하나이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우리의 종교는 ‘삶’이자 ‘전부’이다.   종교 행위 안에 갇혀가는 교회들. 더 이상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 안에서의 외식에 빠져가며 자신만을 위한 종교를 가지려고 애쓰는 비성경적인 교회들.   기독교는 자신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종교’이다.   우리 하나님과 나의 관계 속에서 내 이웃을 포함하는 종교.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교회를 다니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당신은 어디 있는가?   교회는 우물 안 물이 아니다. 계속 흘러가는 물이다. 전 세계를 품어 가는 물이다.   성령의 물이 되어서 흘러가라.   교회는 기독교인을 세상으로 파송하는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은 그 에너지로 복음을 전하며 죽어가야 한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죽어라 그러면 영원히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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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
    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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