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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 미래의 혁신적인 복지 혜택과 복지경영 패러다임
    김성철 교수(백석대 보건복지대학원)     글로벌화로 인해 세계 경제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기업의 성공과 몰락의 패러다임 한가운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가 자리잡고 있다.   기존의 일자리와 산업구조 자체가 가까운 미래에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변혁을 겪을 것임을 전 세계의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제 성장의 비결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생존이 1순위이며, 생존이 곧 성장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온 변화와 조직 운영 각 분야가 뒤바뀌고 있는 패러다임에 올라타지 못하면 예외 없이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혁신은 연구개발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애플이 매킨토시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IBM은 애플보다 최소 100배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했습니다. 혁신은 돈 문제가 아닙니다. 혁신은 당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에 따라서 얼마나 결과를 얻느냐에 달렸습니다.” 1998년, 스티브 잡스가 미국 경제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2007년 10월, 잡스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스마트 기능을 탑재한 아이폰을 내놓았다.      이렇게 열린 스마트폰 시대는 단지 통신수단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지금껏 남들이 하지 않은 생각을 하고 그동안 자기가 해보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생각과 행동으로 혁신을 일으킨 사람들은 세상을 바꿔 왔다.   진정한 혁신가는 수박 속에 있는 씨만 보는 게 아니라 씨 속에 있는 수박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수박 속에 들어 있는 씨는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싹이 돋기 전에 씨 속에 수박이 들어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어떤 혁신의 씨앗은 수백 년이나 묵혔다가 천신만고 끝에 싹을 틔우기도 한다.   라이트 형제는 하루아침에 뚝딱 비행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꿈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씨앗으로 여물어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씨앗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혁신 마인드라는 씨앗이다.   우리는 이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 혁신이 일상이 될 이 시대를 여는 키워드는 변화다. 끊임없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창조해야 한다. 변화만이 살 길이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따라 기업들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혁신에 뒤떨어진 기업은 제아무리 세계적인 규모의 기업일지라도 예외 없이 쇠퇴하다가 사라진다.     《포브스》가 해마다 선정하는 글로벌 100대 기업, 판도를 보면 더 분명하다. 2007년에 글로벌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기업 중 절반이 넘는 59개사가, 겨우 10년이 지난 오늘날 100대 기업에서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혁신적인 기업들이 메워가고 있다. 기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당연히 기업의 리더십도 근본부터 변화하고 있다. 대량생산 시스템 환경에서 일사불란함이 강조되던 불도저식 리더십으로는 더 이상 기업이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혁신이 더욱 강조되면서 기업에 필요한 인재상이 전혀 딴판으로 바뀜에 따라 리더십도 바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기존의 아날로그적 사고방식과 타성에 젖은 대처 방식 그리고 구태에 갇힌 권위적인 리더십으로는 기업을 일으킬 수도, 보존시킬 수도, 발전시킬 수도 없다. 하루만 멈춰도 퇴보하게 마련이고 하루만 묵혀도 구닥다리가 되고 마는 시대다.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더 이상 높은 보수만으로는 직원의 마음을 붙잡아두기에 부족하다. 이제는 기업 문화 구축을 통해 더 풍성한 주변 가치를 직원에게 제시해야 한다. 기업 문화는 기업 경영 철학의 연장선이며, 복지는 가치 분배의 일환으로 기업의 경영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기업 문화는 시대의 특징을 뚜렷하게 반영해야 하며 혁신적인 발상을 끊임없이 도입하고,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낡은 관념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업의 복지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혁신적인 복지 혜택이 미래의 트렌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데 복지경영의 패러다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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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
    2020-01-20
  • [선교] 지금 이란 여행 가도 되나요?
    무슬림선교훈련원(원장 이만석)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다음 달에 이란에 여행 계획을 잡아 놨는데 지금 이렇게 어수선한데 가면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문과 방송을 보면 연일 미국의 거셈 솔레이머니 사살 사건 때문에 이란에서는 미군 주둔 캠프에 미사일을 쏘는 등 이란과 미국이 곧 전쟁이라도 치를 듯이 으르렁대는 것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뉴스들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미국과 이란 모두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니 걱정 말고 다녀오시라고 했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 큰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렇게 무책임한 대답을 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대답을 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란에서 20년을 살아 본 사람이다.   이란의 치안은 중동에서 최고 안전한 나라라고 자부하고 있으며 필자도 이를 인정한다. 필자는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치열했던 1986년부터 근 20년간 이란에서 살았다.   1980년 9월에 시작된 이 전쟁은 1988년 8월까지 계속되었다. 미국이 이란의 비행기 부품제공을 금했기 때문에 이란의 전투기들은 한 대도 뜨지 못하는 동안 이라크의 공군기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 상공까지 날아와 민가에 미사일을 쏘고 돌아갈 정도로 치열했었다. 그 때까지 이란의 구호는 “장그 장그 타 피루지(승리할 때까지 전쟁, 전쟁이다)” “터 억하린 까트레예 훈(마지막 피한방울까지)”라고 외쳐댔으나 수도 테헤란에 155발의 미사일을 맞으며 호메이니 옹은 “이라크에서 먼저 유엔에 평화안을 제출했으니 우리가 이겼다”고 승리를 자축하며 전쟁을 끝냈다.   만일 한국 같았으면 수도 서울에 미사일 한 발만 떨어져도 보따리 싸서 피난한다고 공항으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란 사람들은 언제 또 미사일이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도망갈 생각은 커녕 미사일에 파괴된 집과 깊이 파인 웅덩이로 몰려들어 구경하느라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때는 이란과 이라크라는 두 이슬람국가끼리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민간인들에게도 폭격을 가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상대가 미국인 것이다. 만약에 진짜 전면전이 벌어지더라도 미국은 결코 민간인들에게 폭격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안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근래에 지금처럼 이란이라는 나라에 한국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도 없었다. 이런 기회에 중동의 패권을 추구하는 이란을 좀 더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란은 성경에 등장하는 고레스, 다리오, 아하스에로,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압버스, 거저르, 팔레비 왕까지 2,500년간 왕이 다스리던 나라다.   마지막 왕인 팔레비 왕은 친미 성향으로 이란 경제를 중동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당시 이란 사람들은 유럽에 버금가는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 때 왕을 대적하다가 외국으로 추방당한 호메이니는 “만일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땅에서 펑펑 나오는 기름 팔아서 국가 운영하고 남는 돈은 각 가정에 배달해 주겠다. 돈이 남는데 왜 국민들에게 세금을 거두는가?”는 등의 말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성공하여 팔레비를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국호에 이슬람을 삽입하고(Islamic Republic of Iran) 이슬람율법으로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었다.   혁명 후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해외로 피신하고 이라크와 전쟁 통에 전사자들에게 “순교자”칭호를 주며 유가족들에게 트럭이나 트레일러를 한 대 씩 주는 등 선심을 쓰며 국민들의 마음을 달랬으나 재정이 고갈되자 선심도 사라지고 세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전쟁 중이라서 어쩔 수 없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착한 국민들은 이해를 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도, 호메이니가 죽어도 경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통치 경험이 없는 이슬람 성직자들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모든 기관의 최고 결정권자는 이슬람 성직자들로 세웠다.   그러니 팔레비 때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던 진짜 실력 좋고 경험 많은 사람들은 재산 정리하여 대우 좋고 안전한 해외로 빠져 나가고 경제는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 때 팔레비 왕 밑에서 충성했던 경험 많은 고급인력들을 기용해서 “당신들이 계속 나라와 경제를 운영하고 우리는 백성들의 영적인 성숙을 교육하는 신앙부분만 책임지겠다”고 했다면 이란은 지금도 부강한 나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 때 재산이 많거나 벼슬했던 사람들을 축출하고, 왕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죄인 취급하며 처벌하면서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고 여성들은 히잡을 의무화하고 여성 법관들은 모두 해고하는가 하면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죽이는 등 이런 모든 일들을 이슬람의 이름과 신앙과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하면서 경제는 곤두박질하니 어떤 국민이 이런 정권을 지지하겠는가?   정부가 이슬람 율법을 강요할수록 호주머니가 비어있는 국민들은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입법부와 사법부 및 매스컴과 군부와 치안을 장악한 정권은 국민들의 저항을 용납하지 않았다.   지금도 삼권분립이 존재하고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서 지도자도 선출하기도 하고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하고 재판을 통해서 사형을 언도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도 이슬람율법의 최고 결정권자인 종교지도자(Supreme Leader) 허메네이(Khamenei)의 추인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한다.   이란의 대통령선거는 매우 특별하다. 건강한 무슬림 남성이면 누구든지 출마가 가능하기에 수천 명의 입후보자가 등록한다. 그리고는 후보가 너무 많아서 국민들이 선택하기 좋도록 일차 자격심사회의를 거쳐서 4명 정도로 후보를 압축시킨다. 이 때 이미 이슬람성직자들의 기준에 안 맞는 사람들은 모두 걸러지고 국민들이 누구를 선택하든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국회의원 출마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차 자격심사위원회에서 정권과 코드가 안 맞는 사람들에게는 출마 자격이 박탈된다. 심지어는 직전 회기 국회의원들도 출마 자격이 박탈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경제만 좋다면 이란 국민들은 누가 다스리든지 상관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다.   이란이 핵무기를 만든다고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게 되자 세금이 순식간에 3-4배가 뛰는가 하면 휘발유 값이 몇 배가 뛰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팔레비 축출 전 1979년 당시 미화 1$는 70리얄이었다. 화폐 개혁 없이 계속 평가절하 되어서 2011년 말 1$당 9,800리얄 하던 것이 2012년 초 17,000리얄로 뛰더니 2018년 초 4만 리얄에서 2019년 초 11만 리얄이 되었고 2020년 1월 현재 13만 2천리얄이다.   2019년 11월 중순에도 이란에서는 경제가 어려워지자 휘발유 값을 올렸다. 1 리터 당 1만 리얄 하던 것을 1만5천 리얄로 올렸다. 그러면서 자동차 한 대당 한 달에 60 리터로 소비량을 제한하고 그 이상의 연료가 필요하면 리터 당 3만 리얄에 사서 쓰라는 것이었다. 이란은 땅이 넓어서 도시간 거리가 수백 Km 정도 되니 60리터로는 한 달간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결국은 유가가 300%로 인상된 것이다.   이란의 일반 노동자들의 일당은 2020년 3월21일까지 유효한 정부 고시 최저임금에 의하면 50만5627리얄(현재 환율로 미화 약 3.8$)이다.   국민들은 정권에 대한 불만이 표출될 경우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이 무서워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유가 인상으로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여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나고 최고 지도자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사태로 확산되자 강력하게 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수천 명을 체포했다고 한다.   이란 정부도 국민들의 경제적 불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불만을 경제적으로 해소시켜줄 만한 능력은 없고 그것을 미국에 대한 분노 쪽으로 전환시킬 작전을 짜고 있었다.   그래서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거셈 솔레이머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이 이라크에 있는 민병대를 시켜서 미군들을 공격함으로 미군의 반격을 유발시키려 했다고 한다.   솔레이머니는 지난해 10월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이 내려다보이는 바그다드의 티그리스 건너편 모처에서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 지도자들을 만나 “이란이 신형 무기를 제공할 테니 미군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여라”고 주문했으며, 이들이 만나기 직전에는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카타입 헤즈볼라(KH)에 레이더를 피하는 기술을 갖춘 최신 드론으로 미군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솔레이머니는 또 미국인 거주지를 타격할 민병대를 새로 구성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2020.1.7. 동아일보)   그래서 이라크 시야파 민병대는 2019년12월27일 키르쿠크 미군기지에 로켓포 30발을 발사해 이라크계 미국인 통역사 노리스 하미드(33)를 살해하고 수십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에 미군은 공격 주체로 보이는 카타이브 헤즈볼라와 연관된 목표물 5곳을 공습해 25명을 사살했다.   그러자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 지지자들이 바그다드 미국 대사관 주변에 모여들어 폭력시위를 했다. 이들은 50여개의 텐트를 치며 급식소와 의료시설까지 완비하고 장기 농성을 꾀하며 담장과 입구 시설물에 불을 지르며 본관 진입을 꾀했다.(2020.1.2. 뉴데일리) 그리고 1월3일 배후를 알 수 없는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로켓포 공격으로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1월3일 미국은 드론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거셈 솔레이머니를 사살한 것이다.   이 때 미국은 “우리는 이란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 거셈 솔레이머니를 사살한 것이다. 만일 그를 살려두었다면 많은 미국인들이 살해당했을 것이며 그러면 이란과 미국의 전쟁은 불가피했을 것이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이미 2019년 4월 8일 중동에서 함마스와 헤즈볼라를 지원하며 활동하고 있는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했으며 이번에 그 사령관을 제거한 것이었다.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한 것에 대한 분노로 이라크 의회는 미군 철수를 의결했으나 미국은 “적당한 때에 철수 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이란은 이에 거셈 솔레이머니를 순교자로 지칭하며 국가적인 장례행사를 통해서 반미감정을 고조시키며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데 일단은 성공했다고 보인다.   숨진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거셈 솔레이머니의 딸은 장례식에 참석한 하산 로허니 대통령에게 “누가 복수해 줄거냐”고 묻자 대통령은 “우리 모두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1월 7일 장례식이 끝나자 바로 이라크의 미군기지를 향해 수십 발의 지대지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란은 이 공격이 매우 후련한 복수였으며 이로 인해 약 80명의 미군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국영방송을 통해서 발표했다.   그러면서 만일 미국이 또 다시 이란에 보복한다면 더 큰 공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일단 복수의 모양새를 취해서 국민들의 분노도 달래고 체면도 살렸지만 전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는 입장표명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52개의 공격목표를 정했다고 발표하면서 대규모 전면전이 곧 터질 것 같은 위기감이 조성되었지만, 이란은 공격을 감행하기 1시간 전 이라크에 공격 사실을 통보했으며 미군이 대피할 시간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실제로 미군의 인명피해는 없었다는 보고를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공격 대신에 경제 보복을 취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서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솔레이머니와 함께 사망한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PMF) 부사령관으로 인해 이라크 민병대가 미군에 보복성 공격을 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불씨로 남아있긴 하다. 미국에서는 이들도 이란의 지시를 받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인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복수를 해야 하겠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언제나 이란이 경제가 좋아져서 먹고 싶은 첼로케밥을 돈 걱정 없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까? 언제나 이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수 있을까?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슴 속에 있는 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날이 기다려진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는데 지금 이란은 깊은 밤으로 보인다.   멀지 않은 장래에 이란 사람들이 도시마다 교회를 세워 예수 그리스도를 목이 터져라 찬양해도 아무도 체포하러 오지 않는 날이 오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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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20
  • [복지] 서비스의 문제해결을 위한 솔루션과 복지경영
     김성철 교수(백석대 보건복지대학원)       UN에서 발간하는 미래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맥킨지 연구소를 비롯한 세계의 유수한 연구소들은 첨단 기술이 지금의 일자리를 잠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근래에 들어 언론 매체에 많이 회자되는 주제어로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로봇, 무인자동차, 차세대 유전자 지도, 3D 프린터, 신재생 에너지, 나노 기술 등이 있다. 어떠한 신기술이 개발되든 어떤 신물질이 발명되든 거기에는 관련된 새로운 서비스가 함께 창출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의 출현은 새로운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고, 새로운 서비스는 기술과 제품을 더욱 유용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서비스를 제공해줄 서비스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미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고 있거나 서비스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선견지명이 있었든지 아니면 아주 운이 좋은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어떤 경우에도 서비스에 관련된 직업은 진화되고 분화되며 계속 발전할 것이다. 더불어 진화된 서비스 관련 직무와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적 변화는 서비스 직원, 서비스 전문가 혹은 서비스 관리자 및 서비스 리더들에게는 더욱 높은 수준의 전략과 실행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해왔던 서비스 제공 방식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설사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서비스 사다리의 가장 아래에 자리한 서비스 블루칼라의 영역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상은 산업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병원, 정부, 비영리기구 등 사회의 전 분야와 모든 조직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또 요구될 것이다.   서비스의 기본은 고객의 질문에 응답하고, 요구하는 정보를 제공하며, 구매한 상품이나 서비스로부터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기업은 무능, 무사안일, 정보 부족, 약속 불이행, 부주의, 잘못된 업무 처리, 불친절 등의 모습으로 고객에게 각인된다.   기본적인 서비스라도 제대로 제공하는 기업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솔루션을 빠르고, 정확하고, 친절하게 전달한다.     기업이나 조직에서 서비스를 담당하는 실무자나 경영자는 솔루션 제공 능력과 세 가지 전달 방법(빠르고, 정확하고, 친절하게)에 대하여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은 ‘빠르고, 정확하고, 친절하게’의 수준이 스스로 어떠한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서비스 수준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기업에서 대부분 제일 먼저 시행하는 것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교육이다. 이름하여 친절서비스 교육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어디서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고객 서비스는 이 친절 서비스 교육 때문에 많이 망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루션을 전달할 능력이 갖추어지고 난 이후에 친절은 의미를 갖게 된다. 친절은 세 가지 전달 요소들 중 하나이고 그나마 순서로 따지면 제일 마지막이다.   기대는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객 서비스에 있어서 고객의 기대는 고객이 예상하는 서비스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듯이, 기대 수준이 큰 고객은 기대 수준이 낮은 고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고객의 기대 수준은 유사한 서비스를 받았던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기업에서든 혹은 다른 곳에서든 수준 높은 서비스를 받았던 고객은 그만큼 기대 수준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유사한 서비스를 경험한 적이 없는 고객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신문 기사, TV 광고 등을 통한 간접 경험에 의하여 기대 수준을 스스로 조정하게 된다. 고객의 기대 수준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제공해야 할 서비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고객의 서비스에 대한 기대 수준은 거래가 계속되면서 높아져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당 기업을 통해서든 아니면 다른 경쟁 기업을 통해서든 수준 높은 서비스를 경험한 고객은 대체로 그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비스의 내용, 서비스 시간대, 고객의 연령층 등 다양한 변수들이 고객의 기대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경험이 많은 노련한 서비스 직원과 신입 서비스 직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처럼 비정형적이며 주관적인 고객의 기대 수준을 파악하는 능력일 것이다.   과거에 제공된 서비스의 이력이 참고는 될 지라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기대는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객 서비스에 있어서 고객의 기대는 고객이 예상하는 서비스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듯이, 기대 수준이 큰 고객은 기대 수준이 낮은 고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서비스는 문제해결을 위한 솔루션이고 그 솔루션이 전달되는 과정인데 이것이 복지경영이다.
    • 오피니언
    • 복지
    2020-01-09
  • [선교] 바로 오늘 이곳에서,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길
        종일 차에 실려서 도착한 숙소의 이름이 ‘천천히’였습니다. 우리말로 ‘느긋이!’라고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마치 저를 보고 “얘야! 이젠 좀 천천히 해라!”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였을까요? 전기도 천천히 켜지고 또 천천히 꺼졌습니다. 손이 닿기가 무섭게 꺼지고 켜지는 데 익숙한 저는 좀 당황했습니다. 설교 중에 이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나네요. 부친이 이민 초기에 타신 차가 10분이나 걸려서 발동이 걸렸다고요. 그 덕분에 영화 회사에 가게 됐고 이민 가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고요. 그 차는 저의 첫 미국 이민 차였고 그 차로 운전 면허를 받았습니다.   제가 마음이 좀 급한 편이지만 행동은 굉장히 느린 편입니다. 그런 제가 35년을 달려 온 과정이 느리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되었습니다. 그리 바쁘게 다닌 것 같지 않은데 기록을 찾아보니 2019년에 234번 강단에서 설교를 했네요. 적지 않은 횟수이지만 문제는 바른 소리를 냈느냐는 것입니다. 사역을 시작할 때 파수꾼이 나팔을 제대로 부는지에 관한 말씀인 에스겔 33장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다시 읽게 하십니다. 설교를 몇 번 했느냐보다 설교를 바로 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하십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역합니다. 한국 땅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저 또한 예외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 험악한 한국 교회와 북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북한의 상황이나 알렸고 개인적인 간증에 치중했음을 회개합니다. 나팔수가 나팔을 제대로 불지 못했습니다. 파수꾼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의 소리를 낸 것은 순종이었고 결과적으로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의 순종이 여러분과 나의 죄를 대속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뾰족한 교회의 십자가가 동네마다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위해 피 흘려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 종들의 흔적이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나팔수로서 파수꾼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제 자신이 죽음에 이르더라도 마땅히 불어야 할 나팔 소리를 내게 되기를 원합니다. 파수꾼으로서 광야의 소리를 외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바로 오늘. 바로 이곳에서 이 시간에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CORNERSTONE MINISTRIES INTERNATIONAL  모퉁이돌선교회 [2020 . 1 카타콤 소식]  무익한 종 이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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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8
  • [선교] 복음의 삶은 믿음으로만 살아가는 삶이다
    김용의 선교사(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밤이 깊고 어둠이 짙다고 이곳저곳 방황해야 할까. 아니다. 새벽은 해 뜨는 동편에서만 열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호세아 선지자는 비명처럼 외친다.   생명을 얻는 길은 해가 동편에서 떠오르듯 오직 한 길 뿐이다.   역사의 암울한 시기마다 시대를 일깨우는 선지자들의 외침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졌다.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를 만날 때에 그를 부르라.’   소망이 없어 보이는 이때, 우리의 눈을 들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구원의 유일한 소망이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세상의 운명은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 달려있다. 그리고 그 보좌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복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기도하는 자들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고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산다. 그렇듯 육의 사람은 세상의 떡과 포도주로 살지만 영에 속한 하늘 백성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   이 혼돈하고 소망 없는 역사에 들려줄 마지막 대답.   ‘다시 복음 앞에!’   야곱에게 돌아갈 벧엘이 있고 탕자에게 돌아갈 아버지의 집이 있듯이 방황하는 인류에게 주어진 유일한 해답은 십자가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완전한 복음이 요구하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의 고백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지금으로 표현하자면 ‘완전한 복음을 주신 하나님 앞에 오직 믿음이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유일무이하고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신 영원하신 하나님. 만물의 근원이자 역사의 통치자시며 의의 왕, 생명의 주관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다윗은 빈들에서 양을 치던 열여섯 살 소년 목동에 불과했다.   어느 날 갑자기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오히려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어떤 보장도 받지 못한 채 10년을 넘게 쫓겨 다녔다. 그러는 동안 부모도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친구 하나도 그의 곁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가 겪는 일생의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다윗은 매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격렬한 세상 현장 한 가운데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모든 환난 중에 아무것도 믿을 게 없었다. 그때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 일생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셨기에 내게는 결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오직 믿음이면 됩니다.”   다윗은 ‘오직 믿음’의 삶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표현했다.   이것은 다윗의 지혜가 아니요,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복음의 비밀이다.   믿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복음의 삶이다. 믿음으로 충분히 살 수 있고 믿음이면 충분하다.     내 손 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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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8
  • [신학] 해결점
      탁지원 현대종교 소장       무조건 맹종을 요구하는 목회자나 맹종이 순종이란 언어로 둔갑하여 그것을 축복의 비결이나 미덕으로 미화시키는 신도들이 있는 교회는 인간의 독재적인 교회이지, 하나님이 바라는 참된 의미의 교회는 아니다. 다스리는 이는 하나님이요! 다스림을 받는 이들은 인간이어야만 한다. - 고 탁명환 소장 -   해 결 점 1   민식이와 하준이 법, 그리고 김용균 법 등의 제정을 촉구하는 운동이 밀물처럼 일고 있다. 비록 당사자들은 떠나고 없지만 다시는 안타까운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숭고한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정 촉구의 법안 중 어느 것 하나도 통과되지 않는 것이 없길 바라며, 그 외 세월호 사건처럼 미제 사건들 역시 올해에는 모두 명명백백한 결론이 있길 소망해 마지않는다.   차제에 이단 피해자들이 외쳐왔던 ‘유사종교 피해방지 특별법’ 등의 관련법들도 제정 바로 앞에까지 만이라도 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이 나라 종교의 자유엔 사이비 종교의 자유까지 포함되는 등 종교 관련 부분은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성종교든 이단 종교든지 간에 종교로 인한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부처나 부서에서 최소한의 노력과 관심은 가져야 하지 않나싶다.   이에 본지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으나 조금의 성과라도 기대하며 할 수 있는 한 조금씩이라도 살펴볼 것들 잘 살펴 볼 수 있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 위의 가족들을 생각하니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일부 이단 피해자들이 가족의 문제가 해결됨과 동시에 이단 문제에 대해 문을 닫고 살아가고 있어서다.   이단만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는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위의 민식이 부모나 김용균씨의 어머니처럼 자식은 떠났어도 또 다른 자식의 희생을 걱정하며, 추운 겨울 국회로, 현장으로 나서고 있는 것을 보니 비교하지 않으려야 안 할 수가 없다.   해 결 점 2   ‘우리는 쉬는 것을 미안해합니다. 손님한테, 상사한테, 동료한테 그리고 독자에게 그렇습니다. 뭘 성실히 한다거나 책임감 있다는 말은 쉬지 않고 일하거나 쉬더라도 적게 쉬고 일하는 것과 같아지곤 합니다. 지금도 그런 열심과 성실의 정의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모 주간지 광고 지면에 담긴 글이다.   주간지나 월간지든 간에, 종교 잡지나 세상 잡지 등 언론에 몸담은 이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쉼’이나 ‘재충전’, ‘안식년’ 같은 단어는 언론인에겐 어쩌면 사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러니 본지 직원들에게 ‘종합병원’이란 별명이 달린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오래전 본지의 사역을 걱정하던 노 목사께서 “사역을 100m 달리기로 생각 말고, 마라톤으로 여겨야지만 오래갈 수 있다”라고 했을 때 젊은 육신은 교만했다. 귀담아듣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단과의 영적 전투를 마라톤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거리 경기 정도의 수준으로 생각하고 일했어야 했음을 후회하고 있다. 직업병인지 자격지심인지 일과 후 외식을 한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하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때 누군가와 우연히 만날 때면 그 당연한 ‘누림’과 ‘쉼’에 당당해야 했는데 왜 미안함을 느끼며 지내왔는지 모르겠다.   공적인 일을 벗어난 모든 때를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죽어라 일하는 것이 이단과 싸우는 사람들의 당연한 덕목이 되어야 하고, 그 기대와 바람이 결국 잠시의 ‘쉼’도 허락되지 않는 무언의 지배가 되고 있다.   그래서 소망한다. 올해는 본지의 직원들이 당연하고 당당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아지길, 일에 충실한 만큼 가정과 취미 생활에 있어서도 좀 더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도 물론이다.   노동부에서 권고하는 쉼을 넘어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일과 쉼을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는 지혜가 늘 함께하길 바라며, 빨리 달리는 것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달리는 한 해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올해는 분쟁 없는 훈훈한 교회의 소식만 들려오길 바란다.   성도들은 목회자를 존경하고, 목회자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으로 잘 양육하여 아름답고 근사한 교회를 이뤄가길 바라며, 아울러 성도 간에 섬김과 나눔이 이단 대처의 근본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길 소망한다.   현대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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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7
  • [복지] 미디어의 변화와 미래의 복지경영의 전망
    김성철 교수(백석대 보건복지대학원)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높이는 기술 개혁이다. 그러나 증기기관이 도입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산업혁명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라디오와 전화, 전보에는 전에 없던 특성이 있었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람들에게 라디오는 미래를 알려주는 등불이었다. 그 방향이 거짓이었던 적도 있고 참이었던 때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미디어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영향력을 즉각적으로 행사했다는 점이다.   1950년대 미국의 가정에는 텔레비전이 빠르게 보급되어갔다. 당시에는 영화와 방송용 장비 시장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아서, 방송도 영화처럼 필름으로 촬영해서 제작했다.   그런데 미국은 너무 넓었다. 시차 때문에 동부와 서부로 보낼 방송 영상의 복사본을 급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필름의 복사본을 빠르게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해결책을 낸 곳은 미디어 기술 기업인 암펙스였다. 암펙스의 직원인 레이 돌비는 1956년, 영상의 전기 신호를 자기 테이프에 기록하는 VTR 기술을 개발했고, VTR은 텔레비전의 전성기에 날개를 달아줬다.    4차 산업혁명으로 미디어가 흘러갈 방향은 과거를 살펴보면서 유추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디어는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내용 면에서 보편성의 확보가 가장 큰 특징이다.   미디어의 소비는 이제 특권이 아니라 누구나의 기본적인 권리가 되었다. 심지어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미디어의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도 삶의 기본권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최근 인기를 끄는 개인 미디어가 그 증거다.   미디어 변화의 두 번째 트렌드로는 직관성과 실시간성을 들 수 있다.    미디어의 소비자는 미디어 생산자가 정한 시간과 공간의 질서를 따라야만 했다. 영화를 보려면 극장의 상영 시간을 확인해야 했고, 뉴스를 들으려고 해도 매시 정각을 기다려야 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에 대해 무수한 예측을 해왔는데, 대부분의 전망은 문화의 시대 또는 서비스의 시대로 집중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모든 산업에 문화를 접목시키는 추세다. 서로 다른 산업들을 융해해서 복합하는 방안을 고민 중인 지금, 문화는 문제를 푸는 열쇠나 마찬가지다.    산업은 기준에 따라 수백 수천 가지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산업은 오감을 위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각을 위한 산업, 후각을 위한 산업, 미각을 위한 산업, 촉각을 위한 산업, 그리고 청각을 위한 산업으로 가늠할 수 있다.   건설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건설 분야의 시각산업으로는 도시디자인, 건축디자인, 실내디자인, 토목건축물 디자인 등이 있다.   후각산업은 도시나 건물에 악취가 발생하거나 퍼지지 않도록 하는 보건 관련 산업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각산업은 건축물에 어울리는 음식 문화와 연결 지을 수 있다.   동물들에게 소리는 생존의 기회를 넓혀주는 중요한 감각이었다. 인간 역시 오랜 기간 진화를 거듭하면서 본능적으로 이로운 소리와 해로운 소리를 구분하게 되었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과 관련된 소리는 이로운 소리로, 삶의 안정성을 깨는 위협적인 소리는 해로운 소리로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나 전통 음악들은 자연과 인간에 가까운 소리로 인간에게 따뜻함, 편안함,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인간의 생체 리듬에 혼돈을 주는 소리까지 음악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갖가지 스트레스에 노출된 환경을 극복하려는 자기보호의 본능이 록이나 헤비메탈의 대중화를 이끌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렇게 강렬한 음악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때, 정신적으론 스트레스를 해소할지 몰라도, 인체 세포는 이명이나 난청,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외에도 무기력, 두통, 집중력저하, 혈압상승, 정신분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도 발생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리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우리나라는 IT 강국, 반도체 강국, 생명공학의 강국이다. 그런데 사회 안전과 공정한 교육환경 확보 등을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준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소리는 크기가 아니라 품질로 결정된다.   미래의 복지경영은 산업혁명이 가져온 미디어의 놀라운 변화들을 중심으로 소리의 혁명에 귀 기울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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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30
  • [일반/후원] 기독교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성경만화, '슈퍼북 패밀리' 서비스 론칭
            미국 기독교방송네트워크(CBN)에서 제작하고 디즈니 출신 제작진의 기술력으로 완성된 성경 애니메이션 슈퍼북이 가정용 프로그램인 "슈퍼북 패밀리"가 12월 23일 론칭했다.   슈퍼북은 6-13세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작된 성경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시간을 넘어 성경 말씀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세 주인공의 여정에 함께하며 말씀을 더욱 깊이 배우고, 말씀의 적용을 돕는 방식으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된다.    2017년에 교회학교를 위한 “슈퍼북 아카데미”를 한국어로 처음 선보인 이래, 현재 약 200여 개 교회에서 후원 협약을 맺고 슈퍼북을 사용하고 있다.    슈퍼북은 성경에 충실한 재현과 실감나는 스토리 전개로 어린이들에게 쉽게 복음을 전달하고, 다음 세대를 섬기는 주일학교 교사와 교역자들로부터 복음의 정수와 깊은 울림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9년초 미국 CBN 본사는 슈퍼북을 한국 성도에게 소개하고자 한국어 버전 일부 콘텐츠를 유튜브에 한시적으로 공개한 바 있다.    슈퍼북을 접한 교회와 크리스천 부모의 입소문을 통해 슈퍼북의 더 많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함에 따라 CBN 한국지부는 가정을 위한 슈퍼북 패밀리 서비스 론칭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슈퍼북 패밀리 콘텐츠는 일 년을 기준으로 정기 후원 약정을 통해 제공된다.    슈퍼북 패밀리 웹사이트에 가입하고 1년간 월 2만 원의 정기 후원으로 슈퍼북 시즌1을, 월 4만 원 후원으로 시즌1과 시즌2를 모두 볼 수 있다.    약정 후원 기간 동안 무제한 콘텐츠 이용이 가능하며, 웹과 모바일 서비스 모두 지원한다.    가정예배 가이드와 성경 인물 프로필 등 풍부한 부가 콘텐츠도 추가될 예정이다.    특히 슈퍼북 시즌 1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에게 친숙한 이야기들을 담았으며, 그 중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첫 번째 크리스마스”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어 올해 성탄절 자녀에게 의미있는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 초까지 신규 가입 프로모션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슈퍼북 패밀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 superbookkorea.org를 통해서 확인 가능하며, 카카오톡 채널에서 “슈퍼북”(@슈퍼북)을 추가하면 최신 소식과 론칭 이벤트 등 다양한 혜택에 관한 정보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23일부터는 슈퍼북 패밀리 슈퍼북을 널리 알려준 후원자를 대상으로 교육용 미니PC, 에어팟 등 푸짐한 경품을 제공하며, 프로모션 기간내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감사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자세한 정보는 슈퍼북 카카오톡 채널에서 확인하면 된다.    슈퍼북 서비스를 운영하는 CBN 한국지부는 국내 후원을 통해서 운영되고 있으며, 출시를 앞두고 있는 시즌 4와 5을 포함한 후속 시리즈 역시 국내 후원을 통해 한국어로 제작 및 보급이 가능하다.    14년에 걸쳐 현재도 제작되고 있는 슈퍼북 성경 이야기 애니메이션은 총 5개 시즌, 65개 성경 이야기로 구성된다.    한국어로는 지금까지 39개 이야기(시즌3)가 완성되었으며 이후 매년 새로운 시즌 출시를 목표로 한국어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슈퍼북 시리즈는 전 세계 90여 개 국가에 방영되며 지금도 많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슈퍼북 후원 계좌: 국민은행. 592201-01-648855 문의: 02-6933-0414 ㅣ 카카오톡 플러스채널 "슈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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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30
  • [선교]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야 하고, 되찾아야 할 부흥”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마지막 날에는 연합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세 나라, 이스라엘과 애굽과 앗수르가 연합하여 세계 중에 복이 될 것이다(사 19:23~25).   이 세 나라는 세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세 나라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었다.   둘째, 이 나라들은 원래 한 혈통에서 나왔다.   셋째, 이들은 구원의 대상으로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연합될 수 있을까?   인종과 혈통에 상관없이, 정치적 배경을 무론하고,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복음 안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   복음 안에 시온의 대로가 열렸다.   시온의 대로에서 하나님과 죄인이 ‘임마누엘’의 연합을 이루고, 죄인과 죄인이 하나 되어 가정의 연합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공동체가 된다(엡 2:13~18).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서로 연합하여 사랑하는 것은 죄인들의 본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독하게 ‘내’가 중심되어 살아오던 사람들이 어느 날 믿음으로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 스가랴의 환상이 이루어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슥 8:23)   이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야 하고, 되찾아야 할 부흥이다.   지금의 교회는 더 이상의 신학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은 신학적 연구를 해 놓았다. 화려한 예배당과 조직, 교단, 무엇 하나 모자란 것이 없다.   그러나 교회는 맥을 잃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실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능력은 한 몸 된 공동운명체였다.   구경꾼이 따로 없었다. 성직자 따로 있고, 콘서트 구경하듯이 예배를 구경했던 교인 따로 있지 않았다.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었다. 핍박도 같이 받았다. 자기들의 소유를 ‘자발적으로’ 내놓아 누구 하나 부족하거나 가난하지 않았다. 이런 교회가 세상을 향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교회는 이 영광과 생명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성도는 절대 홀로 완전하지 않다.   따라서 자기 혼자 하나님 노릇하려는 ‘자아’는 교회의 연합을 깨뜨리는 가장 무서운 저주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연합을 가로막는 지독한 자아를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스가랴 선지자의 환상이 실현되는 것은 요원(遙遠)하다.   주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복음을 다 이루어 놓으셨다.   그리고 마지막 추수(秋收)의 때인 지금은 우리의 순종만이 남아 있다.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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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7
  • [일반] 기독교 관점, 올해 전 세계 ISSUE, 두 번째 '영국과 브렉시트 그리고 기독교'
              브렉시트(Brexit)란 영국을 뜻하는 브리타니언(Britain)과 탈퇴를 의미하는 엑시트(Exit)의 합성어이다. 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한다.   현재 총리 보리스 존슨은 브렉시트에 있어 대표적인 '강경파'로 '하드 브렉시트(EU와 완전한 결별)'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인물이다.   브렉시트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2015년 5월 총선 선거 과정에서 보수층의 표를 얻기 위해서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2017년까지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는 총리에 당선되었다.   2015년 선거 후 승리 연설에서도 그는 이 약속을 다시 확인했다 .    약속을 지키기 위해 캐머런 수상은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를 단행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국민투표는 'EU 탈퇴'라는 결과를 낳았다.   찬반 국민투표에서 투표에 참여한 영국 국민 51.9%가 브렉시트 찬성에 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됐다.    영국의  EU 탈퇴는 1973년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이다.    EU는 1958년에 유럽경제공동체(EEC)로 출발했고, 1967년에는 유럽공동체(EC)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영국은 1973년에 EC의 회원국이 되었다.   그리고 EC는 1993년에 유럽연합(EU)로 체제와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U는 세계 총 생산의 30%를 차지하며, 세계 50여 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다. 그만큼 세계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해 오고 있다.   여기서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영국의 수상 처칠이 유럽 대륙이 평화와 안전과 자유 속에서 살도록 유럽합중국을 만들 필요를 주장하면서 결성된 것이 유럽연합체(EU)였다.   그리고 지금 영국은 43년 만에 하차하려고 하는 것이다.   영국이 브렉시트(Brexit)를 생각하게 된 것은 재정분담금 문제와 갈등, 시리아 등에서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문제, 유럽 내 무슬림들의 증가와 그들에 의한 테러, 거기에 대한 저항 심리, 청년들의 실업 문제 등으로 인함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은 브렉시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EU가입 이래로 영국은 기독교 국가로서의 정체성에 심각한 훼손을 입었다.   난민유입으로 인해 영국 인구의 10%까지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또한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유럽연합의 기본정신은 종교다원주의를 이끌고 있으며, 하나의 단일체로 만들기 위해서 세계주의를 지향하며 기독교 근본주의를 제거하려고 한다.   유럽 종교 지도자들에 의하면 유럽 교회들은 세속화와 교인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또한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주의 그리고 반민족주의의 노선을 걷는 관용과 통합의 유럽연합의 정신은 기독교를 더욱 세속화 시키고 있다.   실제로 최근 동성애 인정, 낙태 찬성,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등의 문제는 기독교 전통의 유럽사회가 세속화로 인하여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통해서 세계화에서 벗어나 기독교 정신을 살리고 유럽을 복음화하는 최전방의 기독교국가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한때 영국은 영국국교회를 시작으로 17세기 청교도 신앙과 18세기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의 부흥운동, 1904-1905 웨일즈 대부흥운동 등을 통해서 19세기 전후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다.   그러나 세계 대전 전후로 일어난 산업화로 인한 세속화와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영국 기독교의 쇠퇴를 불러왔으며, 유럽연합에 가입함으로써 통합과 관용을 추구하는 세계주의와 종교다원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인이 더욱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영국의 브렉시트는 하나님이 영국을 과거의 영적인 기독교국가로 회복시키시려고 하는 것 같아 보인다.   2016년 브렉시트 투표에서 영국 전체 크리스천 가운데 가장 많은 영국성공회 신도의 60%가 EU 탈퇴에 찬성했다.   그들은 EU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근본주의 신자들로 영국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신앙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영국이 이전의 기독교국가의 종주국으로서의 면모를 되찾고 세계 선교를 주도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면서 우리 모두가 기도해야 하겠다.     (다음회 '반유대주의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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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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