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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 대한민국(한국교회)은 망해가고 있다.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하나님의 계시를 조금 잘못 받아들이지 않으셨나 싶다.   대한민국이 망해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한국교회가 망해가고 있으니 말이다.   기독교 여론조사기관의 결과에 따르면 목회자가 개선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약 50%가 윤리와 도덕성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뒤이어 물질추구, 교회성장, 권위주의 등이라고 답했다.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조사는 비기독교인들의 응답이 더 높았다고 한다.   이는 비기독교인들이 목회자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상당 부분 담겨 있다는 얘기다.   조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목회자의 설교보다 목회자의 삶을 먼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 사람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도 그리 쓰여 있으니 하나님의 마음 또한 그들과 같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믿음에는 열매가 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1~5절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 하나님의 종에게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열매로 보여진다. 열매가 없다면 애초에 말로만 믿는다고 한 것일뿐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목회자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본다는 것은 성경적인 관점과 같다.   목회자가 진정한 목회자라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데, 그렇지 않다면 성경말씀과는 반대되는 모습인 것이다.   목회자 타이틀은 가졌지만 그저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즉,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예정은 우리를 성경말씀 대로 이끄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은 진짜 목회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은 교회와 신학교가 세속화가 되어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식어가고 있고 가짜복음이 진짜 행세를 하고 있다.   진짜 교회와 진짜 신학교가 없어져 간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교회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넘친다. 그리고 복음이 교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상으로 흘러나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신학교는 신학생들을 더욱 거듭나게 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게 만들어서 사도바울과 같은 진정한 사명자를 만든다.   요즘 교회 안의 모습은 어떠한가?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가 더욱 멀어져 간다. 그 결과 심방(양육과 돌봄)이 갈수록 없어진다. 교회 안에는 물질이 우선시되며, 가난한 자와 병든 자는 발 붙이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성경은 성경으로 끝나길 바라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많다. 그들은 교회와 삶을 분리시키며, 자신의 삶의 근간을 흔드는 일들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설교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온갖 종류의 잡다한 세상 지식과 가치관이 성경말씀과 섞여서 가짜 복음이 나온다. 헌금을 내야만 직분을 받을 수 있다. 사랑과 공의의 구분 없이 동성애를 인정하는 가짜 목사가 나오고, 다른 종교와 섞여서 배교의 길을 걸어간다. 예수님이 머리 되신 교회가 아니라 담임목사가 머리되신 교회를 세우며, 자신의 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다른 것처럼 얘기한다. (가나안 성도들 조사 결과)   더욱 심각한 건 이것이 잘못된 것을 아는데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의 영적부흥은 회개에서 시작되었다!     신학교와 목회자가 되는 과정은 어떠한가?   돈이 없으면 신학 공부를 못한다. 신학은 학문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더욱 더 지식에 파고든다. 어떠한 영성훈련도 학점 이수하고 시험 잘보는 것에 비하여 중요하지 않다. 돈을 내고 목사 안수를 받는다. 목회자가 교회에 사역을 시작하려면 먼저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사역의 시작은 취업의 시작이다. 신앙보다 배경, 학벌, 경력이 더 중요하다(참고로 중대형교회에 들어가려면 유학 정도는 다녀와야 한다).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노후에 먹고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교회 목회자 사이에는 수평적 관계(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자고 먹고등등)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가 있다. 등등 (가나안 성도들 조사 결과)   *기독교인이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성도를 '가나안 성도' 라 한다.   한국교회 안에 진짜 교회와 진짜 신학교가 얼마나 있을까?     물론, 믿음의 열매를 가진 보이지 않는 곳에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들이 있기에 아직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비춰지는 건 위와 같은 모습들 뿐이다.   또한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인하여 이단이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다.      이단들은 한국교회의 모습을 조롱이나 하듯이 많은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더 비성경적으로 가르치고, 더욱 더 큰 건물들을 세우며, 자기 단체와 자기 목회자만이 진짜라고 얘기하며 많은 사람들을 미혹한다.   이단의 태동은 교회의 부패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한국교회는 가나안 성도를 걱정하지만 가나안 성도는 한국교회를 걱정한다.   밖에서 대한민국 교회를 바라보면 분명히 망해가고 있는데 그 안에 있는 이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단에 빠진 많은 이들이 단순히 교리 때문에 빠진 것 같은가?   한국교회들은 그들의 어려운 마음과 고민들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며, 그들에게 본이 되는 길잡이 역할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진짜 복음에 대해서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진짜 복음은 말이 아닌 삶 속에서 나온다.     젊은이들을 포함한 가나안 성도들을 다시 복음 앞에 세우지 못하면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다.   그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교회가 성경에 맞는 교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우리에게도 거룩하라고 하신 것처럼, 한국교회가 세상과 다르길 바랄 뿐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과 행사도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오직 복음만 있고 세상과 구별되기만 해도 많은 젊은이를 포함한 가나안 성도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골탈퇴(換骨奪胎)를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 오피니언
    • 신앙
    2019-12-26
  • [신앙]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해야 할까? 정부에게 복종해야 할까?”
            오늘날 종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논쟁에 직면해 있다.   간혹 종교와 관련된 싸움은 법정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교와 관련된 싸움 속에서 한 줄기의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Becket Fund for Religious Liberty의 루크 굿리치는 정부가 모든 사람에게 양심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전에 CBN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양심은 선과 악을 구분하게 하는 내면의 목소리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양심의 권리를 위한 싸움   루크 굿리치는 오랜 시간 법정에서 양심의 권리를 위한 싸움을 이어왔다.   그리고 그는 최근 ‘Free to Believe: The Battle Over Religious Liberty in America’라는 책을 출간했다.   굿리치는 “정부가 개인에게 자신의 양심을 어기도록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무시하고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계에서 기독교 가치관이 힘을 잃어감에 따라,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이 잘못됐다고 느낀다.   또한 정부의 요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차별’ 행위를 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할까? 정부에게 복종해야 할까?   굿리치는 “기독교인들은 지난 10~20년 동안 커다란 문화적 변화를 겪었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진실, 인권,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 가치관을 받아들였다. 혹 기독교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이러한 가치관들이 논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가치관을 하나의 ‘위협’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수많은 갈등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이제 정부와 하나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의 가장 큰 싸움, 동성애와 성전환자의 권리   굿리치는 “만약 당신이 성경을 읽는 기독교인이고 성(性)과 결혼에 대해 전통적 가치관을 고수하고 있다면, 급속도로 성장하는 동성애자의 권리가 종교의 자유에 있어 가장 커다란 위협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이미 전국에서 수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당신은 성별과 인종을 근거로 타인을 차별할 수 없다.”라고 말해 왔다. 만약 대법원이 성(性)이라는 용어에 성 정체성이나 성전환 상태를 포함한다면, 성(性)에 대해 성서적 가치관을 가진 기독교인은 심각한 문제에 빠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잭 필립스 사건   잭 필립스는 동성애자를 위한 결혼식 케이크 제작을 거부해 법정 공방에 휩싸였다.   이 사건에 대해 굿리치는 “앞으로 수많은 종교 단체들은 오랫동안 가져온 성서적 가치관을 실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소송에 휩싸이게 되고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한편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동성 결혼이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에 대해 굿리치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몇몇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 전통적인 기독교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심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공권력을 사용해 기독교 가치관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강제한다.”라고 말했다.   동성애와 관련해 D. James Kennedy Ministries의 프랭크 라이트는 결혼에 대한 성서적 가치관이 가족 건강에 좋다고 주장한다.   그는 CBN 뉴스에 “성서는 결혼이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고 정의한다. 성서에서 결혼을 이처럼 정의하는 이유는 오로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다.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진 세속적 연구는 이것이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성 부부 사이에서 자란 아이는 동성애 부부 사이에서 자란 아이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성 부부 사이에서 자란 아이가 더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게 되며 마약과 범죄에 빠질 가능성도 더 적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기 위해 결혼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결합이라고 정의하셨다. 동성애자와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성서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편견이 심하고 증오심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묘사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만약 그들이 나에게 ‘당신은 왜 나를 증오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들에게 ‘나는 당신을 증오하지 않는다. 당신과 나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증오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당신을 증오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당신 역시 나를 증오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단순히 다른 가치관을 가진 것뿐이다.’라고 답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가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 좋은 종교와 나쁜 종교   굿리치는 사회가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나는 우리 사회가 개인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는 사회적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것 같다. 사회는 ‘개인적인 종교 생활, 진실과 도덕을 주장하지 않는 종교 생활’을 좋은 종교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진실을 주장하는 종교 생활, 집이나 교회가 아닌 사회에서의 종교 생활, 사회적 논쟁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종교 생활’을 나쁜 종교라고 규정한다. 결국, 복음을 전파하고 성서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도덕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은 비난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전환자를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사회   성전환 문제와 관련해서, 오바마 정부는 병원과 의료직 종사자가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사람에게 그와 관련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명령했다.   이와 관련해 굿리치는 “정부는 의료직 종사자들에게 성전환 수술을 강요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의학적 판단에 관계없이 성전환 수술을 해야만 했다.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차별을 하고 있다고 비난받으며 정부로부터 처벌을 받게 됐다.”라고 말했다.   낙태 역시 큰 논란이 있었다.   낙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낙태 반대론자들을 악마화하려고 노력한다.   굿리치는 “만약 누군가 성서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낙태 시술을 거부한다면, 그는 차별을 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굿리치는 낙태를 반대하는 두 단체인 경로 수녀회와 Hobby Lobby를 위해 법적 싸움을 해 왔다.   굿리치는 “정부는 이 두 단체가 건강보험이나 사업에 있어 시민들에게 낙태 의약품을 제공하도록 강요했다.”라고 말했다.   시련 속, 한 줄기의 희망   대법원은 경로 수녀회와 Hobby Lobby에 대한 소송에서 이 두 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실제로 수많은 법정 공방에서 많은 기독교인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   굿리치는 “우리 앞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놓여 있다. 우리는 상황을 파악하고 현실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곳에서 희망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법정 공방에서 90%가 넘는 승리를 거두었으며 대법원에서는 패배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승리 속에서도 기독교인들은 항상 패배를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점점 더 기독교인에게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할 방안에 대해서 연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성경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해 줄 것인가   굿리치는 “성경은 신앙으로 인해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단지 종교와 관련된 사회 문화적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도 성경의 내용을 잊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정부가 종교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기도를 원하는 학생들은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정부 건물에 십자가를 달도록 강요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부 건물 내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막아서도 안 된다. 정부는 종교를 홍보해서도 안 되지만 반대해서도 안 된다.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Becket Fund for Religious Liberty의 루크 굿리치의  CBN 뉴스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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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
    2019-12-18
  • [신앙] 혼전순결?
          현대사회는 성과 관련된 인식이 점차 개방적으로 변하고 결혼 연령도 늦춰지다 보니, 많은 기독교인들이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일부 사람들은 혼전 순결을 고수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말씀 속의 실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세상 가치관으로 만들어낸 가짜 하나님을 묘사하면서 이전에는 금기시되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허용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으며, 나는 혼전 순결을 지키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브리서 13:4)’   이 말씀 속에는 성관계에 대한 것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가 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순결은 지키고 있는가?     몸의 순결과 마음의 순결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순결을 먼저 지켜야 한다(벧전1:15~16).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주시는 ’견인‘이 따라온다(요10:28~29; 15:5). 믿음을 가진 자는 순결을 지킨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연약하여 넘어질 때도 있으나 믿음은 우리를 다시 회개시키고(눅3:8) 다시 순결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갈5:22~23). 결국, 마음의 순결을 지키면 몸의 순결 또한 지켜진다.   당신의 믿음은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우선 우리의 믿음부터 점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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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4
  • [신앙] 기독교인들의 정치와 문화에 대한 개입, 옳은가 옳지 않은가?
          최근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절반 이상은 교회와 종교 단체가 미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 모순되게 63%의 미국인들은 교회와 다른 종교 기관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인들은 교회가 사회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정하는 문화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교회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미국을 정의하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나와 같은 복음주의자들에게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의 목사님은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의 움직임이다. 따라서 교회를 사회의 특정 부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 공화국에서 어떤 단체가 자신을 자발적으로 사회 문제에서 제외하겠는가? 우리는 공화국에서 살고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개인, 지역 그리고 국가적 중요 문제에 있어 자신을 대표할 사람을 선거를 통해서 선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대표들에 의해 선정된 정책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끼친다. 더 세부적으로 우리의 가족, 아이들의 교육, 업무, 교회, 지역 공동체, (州) 주 그리고 더 나아가 나라와 세계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문화와 공공 정책 그리고 정치에 참여할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만약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당신은 공동체 내에서 선한 일을 함으로써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의무를 지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집 밖에서 신앙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단순히 교회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대해서도 관여를 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위의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라는 문구가 종교인들이 가져야 할 가치관이 되어버렸다.   이제 많은 기독교인은 사회의 뜨거운 논쟁에 있어 자발적인 기권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나는 진심으로 복음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동성결혼, 낙태, (性) 성 정체성, 안락사, 이민, 복지제도 등의 주제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단지 복음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음은 ‘좋은 소식’을 의미한다.   당신이 성경책을 읽을 때, 당신은 많은 주제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발견할 것이다.   성경에는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고유 가치에 대한 좋은 소식이 가득하다. 하나님이 어떻게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는지에 대한 좋은 소식도 있다. 그리고 결혼의 정의에 대한 좋은 소식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기독교인이 건강, 복지, 난민, 교육과 같이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같은 가치관을 가지라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많은 해답을 가지고 있으며, 구체성이 결여된 문제에 대해 일반적인 원칙을 제시한다.   성경은 지금까지 쓰인 다른 책과는 다르다.     성경은 인생, 관계, 결혼, 육아 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시대를 초월한 입증된 원칙을 제공한다.   우리는 법률과 정책에 있어 이러한 성경의 원칙을 그냥 내팽개쳐두어야 할까?   그리고 우리가 지지하는 후보자에 대해서도 이러한 성경의 원칙을 적용하지 말아야 할까?   어떤 상황에서도, 기독교인들은 시민으로서 그리고 복음의 전달자로서 우리의 역할을 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CBN 제임스 가트리 (James Gottry)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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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
    2019-12-06
  • [신앙] 동성애와 간음한 여인
            현대 사회에서 ‘동성애’는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현시대는 남자와 여자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반(反)기독교법이 개정되고 있다.   이에 성경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기독교인들은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대가 변할수록 우리는 동성애에 대해 올바르게 바라봐야 한다.     먼저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만나는 사건을 통해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아보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요1:14)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느 날 간음한 여인을 만나신다(요8장).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간음한 여인을 통해서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묻는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만 빼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리를 떠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에게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내용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이 담겨 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분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어두움 속에 죄를 짓고 사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즉, 간음을 통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여인을 구원하신 분이다.     둘째, 간음한 여인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정죄함을 받지 않았다.     마가복음 16장 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로마서 8장 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앞의 두 구절과 본문을 함께 보면, 간음한 여인이 예수를 ‘주’라 믿고 회개하여 예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신 것을 알 수 있다.   간음한 여인은 최소한 그 자리에서 만큼은 예수님이 ‘주’,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고 깨달으며 마음으로 회개한 것이다.   즉, 예수님을 주라 믿고 회개했기 때문에 정죄를 받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간음한 여인과 같다.   우리는 어두움 속에서 죄를 짓고 살다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더 이상 정죄함을 받지 않고 구원받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간음한 여인은 단순히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셋째, 예수님은 구원을 주시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다.   구원은 단순히 결론의 개념이 아니며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구원을 잘못 이해하면 ‘한 번 구원받으면 무슨 죄를 짓든지 상관없이 구원받는다’라는 잘못된 논리로 변질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심판의 그날까지, 자신의 구원이 예수님 앞에서 완성될 때까지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며 죄를 안 짓도록 해야 된다. (이는 우리의 의지와 능력이 아닌 성령의 역사와 능력으로 가능하다.)     넷째, 죄를 지은 자들을 봤을 때 정죄하지 말고 자신의 죄를 되돌아보며, 그들을 위해서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   율법을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생명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항상 내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죄를 짓고 사는 자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사랑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요즘에는 비판과 정죄가 기독교인들 안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남을 비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세상의 자녀와 같이 비판하고 정죄하지 말고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통해서 동성애를 바라보자.   우리는 하나님이 동성애자에게도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다가가심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던 자들처럼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정죄하지는 않는지 되돌아보며 우리의 죄 또한 다시 살피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구원받도록 도와야 한다.   동성애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동성애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간음한 여인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동성애라는 죄를 다시 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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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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