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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지금 이란 여행 가도 되나요?
    무슬림선교훈련원(원장 이만석)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다음 달에 이란에 여행 계획을 잡아 놨는데 지금 이렇게 어수선한데 가면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문과 방송을 보면 연일 미국의 거셈 솔레이머니 사살 사건 때문에 이란에서는 미군 주둔 캠프에 미사일을 쏘는 등 이란과 미국이 곧 전쟁이라도 치를 듯이 으르렁대는 것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뉴스들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미국과 이란 모두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니 걱정 말고 다녀오시라고 했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 큰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렇게 무책임한 대답을 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대답을 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란에서 20년을 살아 본 사람이다.   이란의 치안은 중동에서 최고 안전한 나라라고 자부하고 있으며 필자도 이를 인정한다. 필자는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치열했던 1986년부터 근 20년간 이란에서 살았다.   1980년 9월에 시작된 이 전쟁은 1988년 8월까지 계속되었다. 미국이 이란의 비행기 부품제공을 금했기 때문에 이란의 전투기들은 한 대도 뜨지 못하는 동안 이라크의 공군기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 상공까지 날아와 민가에 미사일을 쏘고 돌아갈 정도로 치열했었다. 그 때까지 이란의 구호는 “장그 장그 타 피루지(승리할 때까지 전쟁, 전쟁이다)” “터 억하린 까트레예 훈(마지막 피한방울까지)”라고 외쳐댔으나 수도 테헤란에 155발의 미사일을 맞으며 호메이니 옹은 “이라크에서 먼저 유엔에 평화안을 제출했으니 우리가 이겼다”고 승리를 자축하며 전쟁을 끝냈다.   만일 한국 같았으면 수도 서울에 미사일 한 발만 떨어져도 보따리 싸서 피난한다고 공항으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란 사람들은 언제 또 미사일이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도망갈 생각은 커녕 미사일에 파괴된 집과 깊이 파인 웅덩이로 몰려들어 구경하느라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때는 이란과 이라크라는 두 이슬람국가끼리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민간인들에게도 폭격을 가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상대가 미국인 것이다. 만약에 진짜 전면전이 벌어지더라도 미국은 결코 민간인들에게 폭격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안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근래에 지금처럼 이란이라는 나라에 한국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도 없었다. 이런 기회에 중동의 패권을 추구하는 이란을 좀 더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란은 성경에 등장하는 고레스, 다리오, 아하스에로,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압버스, 거저르, 팔레비 왕까지 2,500년간 왕이 다스리던 나라다.   마지막 왕인 팔레비 왕은 친미 성향으로 이란 경제를 중동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당시 이란 사람들은 유럽에 버금가는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 때 왕을 대적하다가 외국으로 추방당한 호메이니는 “만일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땅에서 펑펑 나오는 기름 팔아서 국가 운영하고 남는 돈은 각 가정에 배달해 주겠다. 돈이 남는데 왜 국민들에게 세금을 거두는가?”는 등의 말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성공하여 팔레비를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국호에 이슬람을 삽입하고(Islamic Republic of Iran) 이슬람율법으로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었다.   혁명 후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해외로 피신하고 이라크와 전쟁 통에 전사자들에게 “순교자”칭호를 주며 유가족들에게 트럭이나 트레일러를 한 대 씩 주는 등 선심을 쓰며 국민들의 마음을 달랬으나 재정이 고갈되자 선심도 사라지고 세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전쟁 중이라서 어쩔 수 없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착한 국민들은 이해를 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도, 호메이니가 죽어도 경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통치 경험이 없는 이슬람 성직자들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모든 기관의 최고 결정권자는 이슬람 성직자들로 세웠다.   그러니 팔레비 때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던 진짜 실력 좋고 경험 많은 사람들은 재산 정리하여 대우 좋고 안전한 해외로 빠져 나가고 경제는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 때 팔레비 왕 밑에서 충성했던 경험 많은 고급인력들을 기용해서 “당신들이 계속 나라와 경제를 운영하고 우리는 백성들의 영적인 성숙을 교육하는 신앙부분만 책임지겠다”고 했다면 이란은 지금도 부강한 나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 때 재산이 많거나 벼슬했던 사람들을 축출하고, 왕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죄인 취급하며 처벌하면서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고 여성들은 히잡을 의무화하고 여성 법관들은 모두 해고하는가 하면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죽이는 등 이런 모든 일들을 이슬람의 이름과 신앙과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하면서 경제는 곤두박질하니 어떤 국민이 이런 정권을 지지하겠는가?   정부가 이슬람 율법을 강요할수록 호주머니가 비어있는 국민들은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입법부와 사법부 및 매스컴과 군부와 치안을 장악한 정권은 국민들의 저항을 용납하지 않았다.   지금도 삼권분립이 존재하고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서 지도자도 선출하기도 하고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하고 재판을 통해서 사형을 언도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도 이슬람율법의 최고 결정권자인 종교지도자(Supreme Leader) 허메네이(Khamenei)의 추인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한다.   이란의 대통령선거는 매우 특별하다. 건강한 무슬림 남성이면 누구든지 출마가 가능하기에 수천 명의 입후보자가 등록한다. 그리고는 후보가 너무 많아서 국민들이 선택하기 좋도록 일차 자격심사회의를 거쳐서 4명 정도로 후보를 압축시킨다. 이 때 이미 이슬람성직자들의 기준에 안 맞는 사람들은 모두 걸러지고 국민들이 누구를 선택하든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국회의원 출마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차 자격심사위원회에서 정권과 코드가 안 맞는 사람들에게는 출마 자격이 박탈된다. 심지어는 직전 회기 국회의원들도 출마 자격이 박탈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경제만 좋다면 이란 국민들은 누가 다스리든지 상관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다.   이란이 핵무기를 만든다고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게 되자 세금이 순식간에 3-4배가 뛰는가 하면 휘발유 값이 몇 배가 뛰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팔레비 축출 전 1979년 당시 미화 1$는 70리얄이었다. 화폐 개혁 없이 계속 평가절하 되어서 2011년 말 1$당 9,800리얄 하던 것이 2012년 초 17,000리얄로 뛰더니 2018년 초 4만 리얄에서 2019년 초 11만 리얄이 되었고 2020년 1월 현재 13만 2천리얄이다.   2019년 11월 중순에도 이란에서는 경제가 어려워지자 휘발유 값을 올렸다. 1 리터 당 1만 리얄 하던 것을 1만5천 리얄로 올렸다. 그러면서 자동차 한 대당 한 달에 60 리터로 소비량을 제한하고 그 이상의 연료가 필요하면 리터 당 3만 리얄에 사서 쓰라는 것이었다. 이란은 땅이 넓어서 도시간 거리가 수백 Km 정도 되니 60리터로는 한 달간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결국은 유가가 300%로 인상된 것이다.   이란의 일반 노동자들의 일당은 2020년 3월21일까지 유효한 정부 고시 최저임금에 의하면 50만5627리얄(현재 환율로 미화 약 3.8$)이다.   국민들은 정권에 대한 불만이 표출될 경우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이 무서워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유가 인상으로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여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나고 최고 지도자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사태로 확산되자 강력하게 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수천 명을 체포했다고 한다.   이란 정부도 국민들의 경제적 불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불만을 경제적으로 해소시켜줄 만한 능력은 없고 그것을 미국에 대한 분노 쪽으로 전환시킬 작전을 짜고 있었다.   그래서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거셈 솔레이머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이 이라크에 있는 민병대를 시켜서 미군들을 공격함으로 미군의 반격을 유발시키려 했다고 한다.   솔레이머니는 지난해 10월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이 내려다보이는 바그다드의 티그리스 건너편 모처에서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 지도자들을 만나 “이란이 신형 무기를 제공할 테니 미군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여라”고 주문했으며, 이들이 만나기 직전에는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카타입 헤즈볼라(KH)에 레이더를 피하는 기술을 갖춘 최신 드론으로 미군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솔레이머니는 또 미국인 거주지를 타격할 민병대를 새로 구성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2020.1.7. 동아일보)   그래서 이라크 시야파 민병대는 2019년12월27일 키르쿠크 미군기지에 로켓포 30발을 발사해 이라크계 미국인 통역사 노리스 하미드(33)를 살해하고 수십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에 미군은 공격 주체로 보이는 카타이브 헤즈볼라와 연관된 목표물 5곳을 공습해 25명을 사살했다.   그러자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 지지자들이 바그다드 미국 대사관 주변에 모여들어 폭력시위를 했다. 이들은 50여개의 텐트를 치며 급식소와 의료시설까지 완비하고 장기 농성을 꾀하며 담장과 입구 시설물에 불을 지르며 본관 진입을 꾀했다.(2020.1.2. 뉴데일리) 그리고 1월3일 배후를 알 수 없는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로켓포 공격으로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1월3일 미국은 드론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거셈 솔레이머니를 사살한 것이다.   이 때 미국은 “우리는 이란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 거셈 솔레이머니를 사살한 것이다. 만일 그를 살려두었다면 많은 미국인들이 살해당했을 것이며 그러면 이란과 미국의 전쟁은 불가피했을 것이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이미 2019년 4월 8일 중동에서 함마스와 헤즈볼라를 지원하며 활동하고 있는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했으며 이번에 그 사령관을 제거한 것이었다.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한 것에 대한 분노로 이라크 의회는 미군 철수를 의결했으나 미국은 “적당한 때에 철수 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이란은 이에 거셈 솔레이머니를 순교자로 지칭하며 국가적인 장례행사를 통해서 반미감정을 고조시키며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데 일단은 성공했다고 보인다.   숨진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거셈 솔레이머니의 딸은 장례식에 참석한 하산 로허니 대통령에게 “누가 복수해 줄거냐”고 묻자 대통령은 “우리 모두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1월 7일 장례식이 끝나자 바로 이라크의 미군기지를 향해 수십 발의 지대지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란은 이 공격이 매우 후련한 복수였으며 이로 인해 약 80명의 미군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국영방송을 통해서 발표했다.   그러면서 만일 미국이 또 다시 이란에 보복한다면 더 큰 공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일단 복수의 모양새를 취해서 국민들의 분노도 달래고 체면도 살렸지만 전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는 입장표명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52개의 공격목표를 정했다고 발표하면서 대규모 전면전이 곧 터질 것 같은 위기감이 조성되었지만, 이란은 공격을 감행하기 1시간 전 이라크에 공격 사실을 통보했으며 미군이 대피할 시간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실제로 미군의 인명피해는 없었다는 보고를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공격 대신에 경제 보복을 취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서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솔레이머니와 함께 사망한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PMF) 부사령관으로 인해 이라크 민병대가 미군에 보복성 공격을 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불씨로 남아있긴 하다. 미국에서는 이들도 이란의 지시를 받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인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복수를 해야 하겠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언제나 이란이 경제가 좋아져서 먹고 싶은 첼로케밥을 돈 걱정 없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까? 언제나 이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수 있을까?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슴 속에 있는 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날이 기다려진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는데 지금 이란은 깊은 밤으로 보인다.   멀지 않은 장래에 이란 사람들이 도시마다 교회를 세워 예수 그리스도를 목이 터져라 찬양해도 아무도 체포하러 오지 않는 날이 오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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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20-01-20
  • [선교] 바로 오늘 이곳에서,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길
        종일 차에 실려서 도착한 숙소의 이름이 ‘천천히’였습니다. 우리말로 ‘느긋이!’라고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마치 저를 보고 “얘야! 이젠 좀 천천히 해라!”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였을까요? 전기도 천천히 켜지고 또 천천히 꺼졌습니다. 손이 닿기가 무섭게 꺼지고 켜지는 데 익숙한 저는 좀 당황했습니다. 설교 중에 이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나네요. 부친이 이민 초기에 타신 차가 10분이나 걸려서 발동이 걸렸다고요. 그 덕분에 영화 회사에 가게 됐고 이민 가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고요. 그 차는 저의 첫 미국 이민 차였고 그 차로 운전 면허를 받았습니다.   제가 마음이 좀 급한 편이지만 행동은 굉장히 느린 편입니다. 그런 제가 35년을 달려 온 과정이 느리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되었습니다. 그리 바쁘게 다닌 것 같지 않은데 기록을 찾아보니 2019년에 234번 강단에서 설교를 했네요. 적지 않은 횟수이지만 문제는 바른 소리를 냈느냐는 것입니다. 사역을 시작할 때 파수꾼이 나팔을 제대로 부는지에 관한 말씀인 에스겔 33장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다시 읽게 하십니다. 설교를 몇 번 했느냐보다 설교를 바로 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하십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역합니다. 한국 땅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저 또한 예외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 험악한 한국 교회와 북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북한의 상황이나 알렸고 개인적인 간증에 치중했음을 회개합니다. 나팔수가 나팔을 제대로 불지 못했습니다. 파수꾼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의 소리를 낸 것은 순종이었고 결과적으로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의 순종이 여러분과 나의 죄를 대속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뾰족한 교회의 십자가가 동네마다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위해 피 흘려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 종들의 흔적이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나팔수로서 파수꾼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제 자신이 죽음에 이르더라도 마땅히 불어야 할 나팔 소리를 내게 되기를 원합니다. 파수꾼으로서 광야의 소리를 외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바로 오늘. 바로 이곳에서 이 시간에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CORNERSTONE MINISTRIES INTERNATIONAL  모퉁이돌선교회 [2020 . 1 카타콤 소식]  무익한 종 이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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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20-01-08
  • [선교] 복음의 삶은 믿음으로만 살아가는 삶이다
    김용의 선교사(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밤이 깊고 어둠이 짙다고 이곳저곳 방황해야 할까. 아니다. 새벽은 해 뜨는 동편에서만 열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호세아 선지자는 비명처럼 외친다.   생명을 얻는 길은 해가 동편에서 떠오르듯 오직 한 길 뿐이다.   역사의 암울한 시기마다 시대를 일깨우는 선지자들의 외침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졌다.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를 만날 때에 그를 부르라.’   소망이 없어 보이는 이때, 우리의 눈을 들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구원의 유일한 소망이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세상의 운명은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 달려있다. 그리고 그 보좌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복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기도하는 자들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고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산다. 그렇듯 육의 사람은 세상의 떡과 포도주로 살지만 영에 속한 하늘 백성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   이 혼돈하고 소망 없는 역사에 들려줄 마지막 대답.   ‘다시 복음 앞에!’   야곱에게 돌아갈 벧엘이 있고 탕자에게 돌아갈 아버지의 집이 있듯이 방황하는 인류에게 주어진 유일한 해답은 십자가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완전한 복음이 요구하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의 고백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지금으로 표현하자면 ‘완전한 복음을 주신 하나님 앞에 오직 믿음이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유일무이하고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신 영원하신 하나님. 만물의 근원이자 역사의 통치자시며 의의 왕, 생명의 주관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다윗은 빈들에서 양을 치던 열여섯 살 소년 목동에 불과했다.   어느 날 갑자기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오히려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어떤 보장도 받지 못한 채 10년을 넘게 쫓겨 다녔다. 그러는 동안 부모도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친구 하나도 그의 곁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가 겪는 일생의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다윗은 매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격렬한 세상 현장 한 가운데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모든 환난 중에 아무것도 믿을 게 없었다. 그때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 일생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셨기에 내게는 결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오직 믿음이면 됩니다.”   다윗은 ‘오직 믿음’의 삶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표현했다.   이것은 다윗의 지혜가 아니요,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복음의 비밀이다.   믿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복음의 삶이다. 믿음으로 충분히 살 수 있고 믿음이면 충분하다.     내 손 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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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20-01-08
  • [선교]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야 하고, 되찾아야 할 부흥”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마지막 날에는 연합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세 나라, 이스라엘과 애굽과 앗수르가 연합하여 세계 중에 복이 될 것이다(사 19:23~25).   이 세 나라는 세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세 나라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었다.   둘째, 이 나라들은 원래 한 혈통에서 나왔다.   셋째, 이들은 구원의 대상으로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연합될 수 있을까?   인종과 혈통에 상관없이, 정치적 배경을 무론하고,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복음 안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   복음 안에 시온의 대로가 열렸다.   시온의 대로에서 하나님과 죄인이 ‘임마누엘’의 연합을 이루고, 죄인과 죄인이 하나 되어 가정의 연합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공동체가 된다(엡 2:13~18).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서로 연합하여 사랑하는 것은 죄인들의 본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독하게 ‘내’가 중심되어 살아오던 사람들이 어느 날 믿음으로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 스가랴의 환상이 이루어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슥 8:23)   이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야 하고, 되찾아야 할 부흥이다.   지금의 교회는 더 이상의 신학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은 신학적 연구를 해 놓았다. 화려한 예배당과 조직, 교단, 무엇 하나 모자란 것이 없다.   그러나 교회는 맥을 잃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실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능력은 한 몸 된 공동운명체였다.   구경꾼이 따로 없었다. 성직자 따로 있고, 콘서트 구경하듯이 예배를 구경했던 교인 따로 있지 않았다.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었다. 핍박도 같이 받았다. 자기들의 소유를 ‘자발적으로’ 내놓아 누구 하나 부족하거나 가난하지 않았다. 이런 교회가 세상을 향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교회는 이 영광과 생명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성도는 절대 홀로 완전하지 않다.   따라서 자기 혼자 하나님 노릇하려는 ‘자아’는 교회의 연합을 깨뜨리는 가장 무서운 저주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연합을 가로막는 지독한 자아를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스가랴 선지자의 환상이 실현되는 것은 요원(遙遠)하다.   주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복음을 다 이루어 놓으셨다.   그리고 마지막 추수(秋收)의 때인 지금은 우리의 순종만이 남아 있다.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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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9-12-27
  • [선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마지막 비전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역사의 마지막에 주님이 이루실 놀라운 환상이 있다.   자기를 사랑하여 자긍하고 교만하며 악독하여 전쟁과 무서운 살인, 탐욕으로 뒤엉킨 세상의 마지막 ‘고통하는 때’(딤후 3:1~5)에 죄인들로서는 도저히 꿈 꿀 수 없는 마지막 부흥의 역사가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슥 8:20~23)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일찍이 역사에 없었던 일이 일어난다.   이 백성, 저 백성이 몰려와 죽이거나 빼앗지 아니하고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고 말한다니!   역사 속에서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말이 달라서 서로 뜻이 안 통하는 이방 사람 열 명이 다 한 영에 사로잡혀 유다 사람 한 사람의 옷자락을 잡으며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우리가 보고 들었으니 너희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해 달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역사 마지막 순간에 펼쳐질 아름다운 장면, ‘연합’   마지막 날에 벌어질 위대하고 놀라운 ‘연합’은 정치로도 안 되고, 지방색으로도 안 되고, 교육으로도 안 되고, 다른 무엇으로도 불가능하다.   서로 원수처럼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빼앗고,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저주 받은 이 땅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물어 버리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도록 유일하게 허락하신 교회마저 서로 반목(反目)하고 있다.   신학 지식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건물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500년 전 종교개혁을 통해 어렵게 진리를 되찾았는가 싶더니 불과 10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종교개혁자들이 스스로 간신히 지펴 놓은 개혁의 불길을 스스로 꺼버렸던 역사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나조차 나를 사랑하기 힘든 우리로서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연합’의 꿈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작금의 교회의 상황을 볼 때 더욱 암담하기도 하지만 주님이 이루실 궁극적 비전이 있다.   역사의 마지막에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펼쳐질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비전이 바로 이것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9~10)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절대 섞일 수 없다. 공존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마지막 날 이들 모두가 거룩한 옷을 입고 손에 평화를 상징하는 종려가지를 들고 의와 화평과 희락과 성령의 나라에서 한 형제와 자매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구원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
    • 오피니언
    • 선교
    2019-12-16
  • [선교] 이슬람의 윤리관
    무슬림선교훈련원(원장 이만석)       이슬람은 지금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슬림들 외에는 이슬람의 급성장을 반갑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어떤 나라든지 이슬람 인구가 늘어나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범죄가 늘어나고 테러가 발생하는 등 달갑지 않은 현상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9/11 테러만 생각해 봐도 어떻게 인간으로서 승객들이 가득 타고 있는 출근용 비행기를 납치해서 빌딩을 들이받아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을까?   이것이 전쟁 상황이라거나 또는 마피아 같은 갱단들의 앙갚음이라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혹시 이해하며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고 일 년에 한 달씩 금식하는 철저히 헌신된 종교인들이 평화로운 대도시에서 저지른 사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식의 틀이 깨져버리는 느낌이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윤리관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슬람의 윤리관은 인류 보편적인 기준과는 전혀 다르다.   이슬람 공동체를 움마(Ummah)라고 한다.   이슬람에서는 움마에 유익이 되는 행위는 선행이고 움마에 손해가 되는 행위는 악행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이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이다.   일반적으로 살인 간음 폭력 도둑질 거짓말 등의 행위는 악행이라고 보지만 이슬람의 윤리관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살인이나 폭력 등 강력한 범죄행위도 움마에 유익이 된다면 선행으로 장려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종교에는 최소한의 인류 보편적인 윤리가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인정한다면, 이슬람은 종교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슬람에는 도덕성이 없다는 말인가? 물론 이슬람에도 도둑질하면 손을 자르라(꾸란5:38)는 처벌과 간음한 여인은 가슴까지 땅에 묻고 돌로 쳐 죽여라(하디스)는 처형 등 윤리를 해친 자들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강력한 처벌 규정이 있기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적용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슬람권에서는 금요일마다 대규모 기도회가 열리는데 가끔은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가 설교를 한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대통령보다 높은 직위다.   필자가 이란에 있을 때 이슬람 최고 지도자가 설교를 하는 날은 일삼아서 듣곤 했다.   어느 날 금요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TV를 켰는데 그가 설교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가 막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리기에 수화기를 들었더니 어떤 여인이 울먹이면서 질문을 했다고 한다. “폭력이 좋은 일인가요? 나쁜 일인가요?”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더니 거두절미하고 정답만 알려 달라고 다그치더란다. 최소한 누가 누구를 때리는 폭력인지 말해보라고 했는데도 상황을 배제하고 제발 폭력 자체의 선악을 대답해 달라며 통곡을 하더란다. 아마 남편에게 억울하게 폭행을 당하고 속이 상해서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최고 지도자의 대답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폭력은 좋은 폭력도 있고 나쁜 폭력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슬람을 대항하는 폭력은 악한 폭력이지만 이슬람을 돕기 위한 폭력은 좋은 폭력이다”는 것이 그날 그의 설교의 핵심이었다.     폭력 뿐 아니라 살인도 마찬가지 기준이 적용된다.   꾸란에 보면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는 구절이 있기는 하지만 성경과는 다르게 표현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은 “살인하지 말라(출20:13)”라는 명령에 다른 조건을 붙이지 않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가 나쁜 것임을 나타내고 있지만 꾸란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는 사람을 살해하지 말라(꾸란17:33)”고 명하고 있다.   이슬람 학자들은 이것을 형법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상은 정당한 이유만 있으면 법정에 가지 않고 살해해도 된다는 것이 이슬람의 가르침이다.   이란에 있을 때 신문에서 “배교자는 법정에 끌고 갈 필요도 없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쳐 죽여라”는 칼럼을 읽고 놀랐던 일이 있다.   그러나 이란 사람들은 그 칼럼을 읽고도 아무도 놀라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무슬림들이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슬람의 율법이었기 때문이다.        꾸란을 보면 “4개월의 유예 기간이 지났는데도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교도들을 발견하면 어디서든지 살해하라(꾸란9:5)”고 명하고 있다. 이슬람 학자들은 이 구절이 전쟁터에서 적을 만나면 죽이라는 뜻이라고 미화시켜 설명한다.   하지만, 2절에서 4개월 동안의 여행을 허락하고 나서 4개월이 지나도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이라고 했으므로, 여행객들을 죽이라는 말이지 전쟁터에서 무장한 적군을 죽이라는 말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어디서 만나든지 죽이라는 것은 재판 절차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이슬람의 윤리는 전쟁 윤리다.       이슬람에는 세상을 평화의 집(Dar al salam)과 전쟁의 집(Dar al harb)의 두 부분으로 나누는 특별한 세계관이 있다.   그들의 세계관에 의하면 평화의 집은 무슬림들만이 살 수 있는 곳이고 이슬람 이외의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전쟁의 집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교도들과는 항상 전쟁상태라는 것이 이슬람의 세계관이다. 이교도들과의 전쟁을 지하드(Jihad)라고 하는데 이는 무슬림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다. 아래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를 보자.           아부 후라이라가 전하기를:  어떤 사람이 알라의 사도(무함마드)를 찾아와서 “지하드와 (상급이) 동등한 행위를 알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런 행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그대는 무자헤딘(지하드 전사)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 모스크에 가서 금식하면서 쉬지 않고 이슬람식 기도를 드리며 전쟁이 끝나서 돌아올 때까지 금식과 이슬람식 기도를 멈추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물으셨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부 후라이라는 “무자헤딘(지하드 전사)에게는 그의 말이 긴 줄에 묶인 채 풀을 뜯어 먹는 동안에 밟는 발자국들에도 보상이 주어진다”고 덧붙였다.(Sahih Bukhari Hadith Volume 4, Book 52, Number 44)      지구상의 많은 종교들은 기도와 금식을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슬람만은 기도와 금식보다도 이교도들과의 전쟁에 참여하는 지하드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오랫동안 다정하게 지내던 이웃 마을 사람들이 이슬람을 믿지 않는다고 죽이러 가자는 지하드 전쟁에 보통 사람이라면 참여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꾸란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선자로 정죄하면서 큰 심판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꾸란9:38-39) 지하드에 참여를 꺼리는 사람은 배신자나 위선자로서 지옥의 자식들이라고 한다.(꾸란9:73) 따라서 진정한 무슬림들은 사사로운 정에 얽매어 알라의 명령인 지하드를 집행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슬람에서 지하드가 최고의 가치라면 이슬람의 윤리는 전쟁윤리라고 할 수 있다.   전쟁터에서는 일반적 윤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살인하지 말라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적을 속이지 않으면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말라는 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무함마드는 지하드 전쟁에서 승리하면 남자들은 다 죽이고 점령지 여인들을 병사들에게 전리품으로 나눠주었기 때문에 무슬림 병사들은 불륜이라는 개념 없이 그 여인들과 성욕을 채우곤 했다.   꾸란에는 이런 여인들을 “오른손이 소유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과의 동침을 허락하고 있다.(꾸란4:24)   유럽에서 무슬림들이 간음죄로 처벌받는 경우가 많은 것은 유럽 여인들을 점령지 여인들로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튀니지의 한 이슬람 성직자가 지하드 전사들을 위하여 여인들이 성(性)을 바치는 것은 여인들이 할 수 있는 결혼지하드(지하드 알 니카)라고 파트와(Fatwa:이슬람 칙령)를 선언하자 사우디의 여러 이슬람 학자들이 그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튀니지 내무부 장관의 말에 의하면 약 6000명의 여인들이 시리아에서 고생하는 이슬람 반군들을 위해 자신들의 몸을 바치려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 여인들은 전선에 들어가서 20~30명, 심지어 100명 정도의 지하드 용사들과 관계를 맺고 임신하여 돌아오는 일들이 많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하드를 위해서는 불륜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슬람의 전쟁윤리이다.        물론 이를 불륜으로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결혼 계약서를 쓰고 부부로서 성관계를 한다.   단지 그 결혼 계약이 2~3시간 유효한 시한부 계약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성윤리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무슬림들이 이렇게 편법을 이용하여 불륜을 허용하는 이유는 지하드라는 최고 가치 때문에 전쟁윤리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가 다른 종교나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미덕으로 장려하고 있지만 이슬람만은 비무슬림들과 친구로 사귀지 말라고 꾸란에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꾸란3:28, 꾸란4:138-145) 왜냐하면 전쟁시에 적과 친구가 되어서 내통하면 전쟁에 패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을 떠나면 죽이라는 것이 이슬람의 율법이다.   이는 전시에 탈영하면 사형에 처하라는 전쟁윤리를 적용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따라서 개종한 무슬림들은 자신의 개종을 공개적으로 알리기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이렇게 입에 담기도 부끄럽고 비상식적인 내용을 말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슬람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슬람의 윤리관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슬림들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대책을 세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슬림 형제자매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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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9
  • [선교]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기뻐하는 성탄예배
          구세주 예수님은 메시아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름 부음 받으셨습니다. 예언대로, 언약대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예언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셨으며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고 사흘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시간이 크리스마스입니다.    다만 슬퍼지는 이유는 뭐냐,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내어 놓는 순간의 그 아픔과 괴로움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마음! 크리스마스 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산타클로스, 빨간색, 선물 나누기. 그리고 또요? 예수 그리스도가 빠졌습니다.   우리는 그를 구주로만 여깁니다. 아닙니다. 엄연히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 왕이 오신 날을우리가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은 목자가 아닙니다. 동방박사가 아닙니다. 마리아, 요셉이 주인공이어서도 안됩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구주이시고 왕이신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 예수를 보내신 아버지, 언약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 대상입니다.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과 순종하여 보내신 바 된 예수를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매해 지나가는행사로 끝나 버리고 마는, 핵심을 놓치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제가 슬프다는 말을 썼습니다.   천사들이 “구주가 나셨다”라고 했을 때 찾아갔던 목자들, 동방박사들, 좋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갑시다! 누가 오셨는지를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올해도 북녘의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탄예배를 12월 17일 저녁 7시에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충현교회에서 드립니다.   남북한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높이고 경배하는 성탄 예배는 녹음되어 성탄절에 북한 성도들이 들을 수 있게 방송됩니다.   주님이 왕이시라면 여러분과 저는 종의 자리에 있어야 함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종의 자리에서 왕을 왕으로 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CORNERSTONE MINISTRIES INTERNATIONAL  모퉁이돌선교회 [2019 . 12 카타콤 소식]  무익한 종 이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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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4
  • [선교] '할랄' 과 대한민국
      무슬림선교훈련원(원장 이만석)       1) 할랄 식당을 늘린다고 무슬림관광객들이 많이 오겠는가?   이슬람의 할랄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 사항(와집:Wajib)이 아니라, 해도 좋은 허용사항(할랄:Halal)이며 금지된 것을 하람(Haram)이라고 하는데 금지된 음식이라도 무의식중에 혹은 고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먹었을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꾸란에 기록되어 있다.(꾸란2:173)   그래서 이슬람권에서는 비무슬림들이 경영하는 식당이나 제과점에는 반드시 “비무슬림 기관”임을 명시하는 일정 크기의 광고판을 붙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만 맛이 있다고 소문나면 무슬림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사먹는다.   이슬람권에서 반드시 할랄음식만 고집하는 사람은 대부분 원리주의자들뿐이다. 일반 대중들은 할랄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산다. 할랄식당이 늘어난다고 무슬림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할 뿐이다.        2)할랄식 도축은 현행 동물보호법을 위반하는 범죄행위다.   일반 도축 방법은 짐승을 잡기 전에 전기충격으로 기절시킨 후 잡기 때문에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할랄식 도축은 이슬람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도축 전에 기절시킬 수 없다. 그리고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온몸의 기능이 정상인 상태에서 갑자기 목의 정맥을 끊어야 심장의 펌프작용으로 온몸의 피를 뿜어내기 때문에 짐승이 극도의 통증을 느끼게 된다.   또한 피가 쉽게 분출되도록 죽을 때까지 짐승을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이는 잔인한 동물학대에 해당하기에 유럽의 폴란드 아이슬랜드 노르웨이 스위스 스웨덴 등의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할랄 도축을 법으로 금하고 있고 덴마크도 이를 고려하는 중에 있다.   대한민국 동물보호법 7조1항에도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고, 동종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할랄 도축방법은 대한민국 현행 동물보호법에 의해서도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다.        3)할랄 인증은 이슬람 율법의 노예로 만든다.   우리가 할랄 인증을 받으려는 것은 무슬림들의 돈을 끌어내자는 의도이지 그들의 종교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순진한 사람들을 만난 일이 있다.   그러나 2년 넘는 시간과 수천만원의 돈을 투자해서 할랄 인증을 받게 되면 혹시라도 인증 취소를 받아 손해 볼까 두려워서 무슬림들보다 더 철저히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굴종하게 된다.   참고로 할랄 도축장에는 무슬림들만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잘 훈련된 할랄 도축사들을 대거 수입해 와야 한다.   영국도 파키스탄 할랄 도축사들 5천명을 수입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슬람 율법에 철저한 원리주의자들일 가능성이 크므로 지역주민들과 필연코 마찰이 발생할 것이다.   이슬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또, 인류를 샤리아의 노예로 삼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는 IS나 알카에다의 눈으로 보면 돈 싸들고 와서 할랄 인증서라는 종이에 도장 하나만 찍어 주면 스스로 샤리아의 노예가 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바보스럽도록 “착한 후원자들”로 보일 것이다.        4)정부의 할랄 지원 사업은 헌법에 위배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정교 분리를 선언하고 있다.   국민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특정 종교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다.   정부는 당장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의 영향력을 확산시키기 위한 할랄 지원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1%도 되지 않는 이슬람에 국민의 혈세를 편향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슬람화를 가속화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개인이나 기업이 돈벌기 위해서 할랄 산업에 뛰어드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그러나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금하고 있고 대한민국 헌법과 동물보호법에도 위배되는 행위를 국민의 혈세로 지원하는 행위는 당장 멈추는 것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좋을 것이며 성도들은 이를 위해서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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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9
  • [선교] 무슬림형제단 간부가 난민인정을 받았다니
    무슬림선교훈련원(원장 이만석)     최근에 무슬림형제단 간부가 난민인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 즉각 이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일의 시작인지를 알려야 하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 때 무슬림형제단 활동경력을 가진 이집트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의 답변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무슬림형제단 단원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만 5명이라고 한다.   얼마 전 무슬림형제단들이 이태원에서 모여 시위를 벌였다면서 사진을 몇 장 보내왔는데 사진에서 확인되는 인물만 해도 거의 25명 정도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에 무슬림형제단들이 여러 그룹 와 있는데, 그 중의 한 그룹이 모인 자리였다는 것이다. 여러 그룹이 들어와 있다 보니 서로 다른 그룹들끼리 다툼이 일어나는 일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무슬림 형제단 간부는 어떤 이유로 난민으로 인정된 것일까? 우선 그 사람의 판결문을 구해서 살펴 보았다. 그의 이름은 “버스유니 호삼멜딘 사밀 모함메드”로 기재되어 있었다.(이하 M씨로 호칭한다.) M씨는 2015년 9월 13일 관광비자(B-20)로 입국하여 10월 6일 난민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2015년 12월 30일 난민불인정 판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었다. ① 처음 면접 당시 일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진술했다는 점 한국에 오기 전에는 2014년 1월 2일 취업목적으로 수단에 가서 1년 반 동안 있었다고 진술하였고 이어서 말레이시아로 가서 4개월 있었는데 그 때도 난민신청을 하여 일을 할 목적으로 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적시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한 이유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이집트인으로부터 한국에 난민신청을 하면 장기간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일을 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② 이집트에서 출국할 때 정상적인 출국 심사를 거쳤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M씨가 이집트 정부로부터 위험할 정도로 주목을 받거나 추적당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며 경제적 목적으로 온 사람을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M씨는 이에 불복하고 2016년 1월 18일 법무부에 이의 신청을 했고, 상기와 동일한 이유와 더불어 2016년 12월 5일 주한 이집트 대사관을 통하여 여권을 갱신한 점이 확인되었기에 추적이나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여 2017년 7월 18일 기각되어 한국을 떠나야 할 입장이 되었다.   그런데 M씨는 변호사 3명의 도움을 받아 다시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 결과 최근 1심에서 난민불인정결정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M씨를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집트 정부가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여 구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슬림형제단의 간부였던 M씨가 귀국하면 핍박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점. M씨는 이집트의 1000만이 넘는 무슬림형제단 회원 중 400~500명으로 구성된 언론위원회에서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 간부로서 자스민 혁명 당시 무르시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했다고 한다.   전체 무슬림형제단을 7등급으로 나누면 2등급에 해당되는 위치였다는 것이다.   무르시 당선 후에는 자유정의당 대변인 및 알렉산드리아 정치조정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했고, 무르시가 권좌에서 밀려난 후 경찰에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2010년에도 무슬림형제단 소속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선거운동에 참여했는데, 경찰이 여성운동원을 구타하는 장면을 촬영했다가 체포되어 60일가량 수감 된 경력이 있었다.   그는 무슬림형제단에서 인터넷 방송, 신문발행 등 홍보활동을 하였다.   현재 이집트 형법 86조에 의하면 무슬림형제단 회원이었다는 이유만으로도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판결문에 적시하고 있다. 둘째, 대한민국에 일하러 왔다는 진술은 난민심사 기간이 길어져 장기간 머물게 되면 생계를 위하여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통역상의 오류로 잘못 전달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 셋째, 박해의 경험에 관한 M씨의 진술 중 세부내용에서 다소간의 불일치가 발견된다거나 일부 과장된 점이 발견된다 할지라도 M씨의 불안정한 심리상태, 시간 경과에 따른 기억력의 한계, 역사와 문화감각이 다른 우리나라와의 언어감각의 차이 등을 고려하여 전체적으로 파악하여야 하며, 출신국의 사정이 변화하여 박해 가능성이 명백히 소멸되었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근거 있는 공포로 볼 수 있다는 점. 넷째, 이집트 정부가 2013년 12월 25일부터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관계자들의 출국금지 조치가 확대 강화된 후인 2014년 1월 2일 M씨가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 공항을 통해 출국할 수 있었으므로 이집트 정부가 M씨를 위험인물로 지목하고 추적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뇌물을 주고 편법을 통해 출국한 사례도 있고, 대대적인 검거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12월 초부터 출국 준비를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신청인을 난민으로 인정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다섯째, 여권 갱신에 관해서는 국가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고, 반체제 인사들이 많아 집중 관리하는 터키, 수단, 카타르 등을 제외하면 단속이 느슨하기 때문에, M씨가 주한 이집트 대사관에서 문제없이 여권을 갱신했다고 해서 이집트 정부가 M씨를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로 볼 수 없다. 이상과 같은 이유 때문에 M씨의 난민불인정 처분을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요약하면 이유가 어찌 되었든 M씨가 핍박받을 우려가 있으니 우리가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무슬림 한 사람이 합법적으로 한국의 보호를 받으며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 사람이 그렇게 지키고자 하는 사상이 “이슬람원리주의”라는 데에 있다.   비록 이집트 형법 86조에 의해서 테러집단으로 지정된 단체의 회원이라는 것만으로도 5년 형을 받을 수 있기는 하지만, 법정에서 무슬림형제단을 탈퇴하겠다고 하면 즉시 형이 면제된다고 판결문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M씨는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온다고 할지라도 무슬림형제단원으로서의 사상적 신념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은 어떤 단체인가? 1928년에 하산 알 반나라는 사람이 “원리주의 이슬람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발한 것이 무슬림형제단이다.   이 사상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싸이트 꾸틉(Said Qutb)이다.   그는 원리주의의 지침서로 알려진 『Ma’alim fi al Tariq』(Milestones; 이정표)를 저술했는데, 꾸란을 근거로 지하드(jihad; 이슬람을 위한 전쟁)의 이론과 실천적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9.11 테러를 통해서 하루에 3천 명을 죽인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원리주의 사상을 교육받은 교과서로 유명해졌다.   싸이드 꾸틉은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모의에 주도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암살을 간접 교사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했고, 이 책은 금서로 지정되어 이집트에서 전량 수거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 위험한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의 대형 서점 및 모스크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진리를 향한 이정표”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슬람을 모르는 서양 문명과 세속적 무슬림들을 ‘자힐리야(무지한 자들)’로 칭하며, 무력과 투쟁을 통해 실질적으로 이들과 싸워서 제거하고 이슬람으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폭력적 원리주의 이슬람에 경도된 무슬림형제단 대원들은 대통령 암살 시도, 총리 암살 시도 등 잦은 테러로 인해 이집트 정부의 핍박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박해를 피하고자 온건한 모양새를 취하며 학계, 정계, 언론계, 의료계, 법조계 등을 장악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고, 해외로도 진출하여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등 세계적으로 70여 개의 테러 조직들과 연계하여 활동하고 있다.   수단에서는 이미 국회의원 354석 중 323석을 무슬림형제단이 장악하고 있고, 튀니지에서는 217석 중 69석, 예멘에서는 301석 중 46석, 요르단에서는 130석 중 15석을 장악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심지어 미국에서도 정계, 학계, 언론계 등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은 많은 테러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집트 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아랍에미레이트, 바레인, 시리아, 리비아 등 여러 나라에서, 특별히 이슬람국가들에서조차도 테러집단으로 지정되어 있고, 미국에서도 테러단체로 지정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이제 미국에서 1992년 우마르 압둘 라흐만(Umar Abdul Rahman)이라는 무슬림형제단과 관련된 이집트 원리주의자 한 사람을 난민으로 잘못 받아들였다가 곤혹을 치렀던 한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마르 압둘 라흐만은 중세 이슬람 원리주의의 대표적인 학자 이븐 타이미야의 사상과 무슬림형제단의 싸이드 꾸틉의 사상을 아울러서 발전시킨 사람이다.   그는 맹인으로서 꾸란 주석을 썼으며 알 아즈하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꾸란 9장의 시각으로 본 적들에 대한 꾸란적 행동”이었다. 꾸란 9장 5절은 “발견하는 불신자마다 살해하라”는 ‘칼의 구절’로 알려진 폭력적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우마르 압둘 라흐만은 자말 이슬라미야의 영적인 지도자였는데, 이 단체는 외국인들을 혐오하여 이집트 유명한 관광지 룩소르에서 58명의 관광객들을 사살한 사건 외에도 많은 테러를 저질러 미국, 영국, 이스라엘, 러시아에서도 이미 테러단체로 지정되었다.   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이집트의 이슬람을 세속화시키는 사다트 대통령을 죽이는 것이 지하드라”는 파트와(이슬람 칙령)를 선포하였고, 이를 실천하려는 칼레드 이슬람볼리라는 장교가 사열 도중에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다.   그는 암살을 사주한 혐의로 법정에 섰으나 자신의 파트와가 꾸란을 근거로 한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여 무죄 판결을 받았다. 우마르 압둘 라흐만은 그 후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소련과 싸우는 오사마 빈라덴을 만나 친분을 쌓고 후원 약속을 하였고, 1990년 무슬림형제단이 장악하고 있는 수단에서 관광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가서 빈라덴 그룹의 재정후원 조직을 만들고자 했다.   그가 테러 위험인물 목록에 있음을 확인한 미국은 1990년 11월 그의 비자를 취소하였으나 뉴저지에서 그린카드를 받는데 성공했고, 1992년 그의 그린카드도 테러 위험인물이라는 이유로 취소되었으나 오히려 정치적 난민신청을 하였고, 놀랍게도 CIA의 협조로 그의 난민은 받아들여졌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를 두루 다니며 여러 지역에서 “미국의 은행을 털고 미국에 있는 유대인들을 죽이는 것은 합법적”이라는 설교를 하는가 하면, 서방 세계를 공격하되 “그들의 배를 침몰시키고 그들의 비행기를 격추시키며 그들의 교통과 경제를 마비시키고 육지와 바다와 공중에서 그들을 죽여야 한다”면서 헌신된 무슬림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그는 1993년도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테러를 가하여 수천 명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으나 6명 사망 1042명 부상에 그쳤고,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한편 2012년 6월 자스민 혁명으로 이집트에서 장기집권 중이던 무바라크가 쫓겨나고 무슬림형제단을 등에 업은 무르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무르시는 아직 취임식도 하기 전에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서 “미국의 감옥에 갇혀 있는 우마르 압둘 라흐만을 석방시켜서 이집트로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하여 열광을 받았다. 그러나 무르시도 무너졌고, 우마르 압둘 라흐만은 미국의 옥중에서 2017년 2월 병사했다. 원리주의 이슬람 사상을 가진 한 사람이 정상적인 체류허가를 받고 난민으로 인정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마르 압둘 라흐만은 1992년에 미국의 그린카드를 박탈당했으나 정치적 난민으로 다시 체류하게 되어 테러를 저지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 난민으로 인정받은 M씨는 무슬림형제단의 고급 간부이다.   이슬람을 위해서 테러를 정당화하는 원리주의 이슬람 교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핍박을 받을지라도 그 사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람이다.   그는 대한민국 법보다는 이슬람율법을 지키고자 할 것이며, 한국에 이미 들어와 있는 무슬림형제단들을 규합하여 세력화할 가능성이 크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의 문화와 미풍양속을 파괴하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을 시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파트와(이슬람 칙령)를 선포할 수 있는 무프티급 성직자를 대한민국에 초청하여 지하드 사상을 교육하고 정착시킬 수도 있고, 세력이 커지면 요인 암살 및 주요 시설 폭파 등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M씨가 무슬림형제단 활동을 했기 때문에 자기 나라에서 체포되어 처벌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난민 인정을 했다는 것이 소문이 날 경우이다.   앞으로 무슬림형제단 활동경력이 있는 이집트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쏟아져 들어오거나, 자국에서 경찰에 쫓기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으로 난민신청을 하면 혐의가 분명하므로 처벌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받아준다면, 대한민국은 범죄자들의 천국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 정부는 속히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지금이라도 여러 나라에서 테러단체로 지정된 모든 단체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테러단체로 간주한다는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인 M씨는 국회의원의 90% 이상이 무슬림형제단원으로 구성된 수단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이미 수단에서 살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위험 조건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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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9-11-27
  • [선교] "마지막까지 예수 닮는 그 사람을 찾으십니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의 기록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실 일을 다 채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와 닿습니다.   그 완전함. 그 완벽함. 빈틈이라고는 하나 보이지 않는 예수의 그 모습을 우리는 닮아갈 수 없을까요?   비단 골고다에서만의 일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나같은 죄인 살리려고 완벽하게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표현된 사건이 바로 성경 전체의 기록입니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시간에 맞춰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에 행하셨고 이루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1800년대 후반 들어서야 한국 땅에 복음을 든 선교사들이 오게 하십니다.   우리 땅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로 하나님을 찬양케 하십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히 벌 받을 수밖에 없던 나와 우리를 위해 아들을 기꺼이 내놓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나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다 이루었다.” 십자가 고통 중에서 쏟아 낸 한 마디.   끝났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텐데 굳이 그 상황에서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완벽하게 이루십니다.   우리는 그를 닮지 않았습니다. 그를 닮아야 한다는 것을 앎에도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 사랑을 본받아 닮음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주의 백성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중국에서 저는 그런 이들을 만났습니다. 북한에서도 만났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그런 닮음을 추구하는 미국인 형제와 자매들을 만났습니다.   지독한 핍박과 학대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기뻐하며 매 맞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바로 주의 백성들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환영해 주실 천국을 기다립니다.   소망합니다. 더 나은 본향을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기뻐합니다.   마땅한 일로 여깁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로 생각합니다.   어린 손녀가 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 닮음을 지켜가는 북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우리를 만나게 되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주님을 닮지 못하겠지요?   “목사님 닮고 싶어요.” 이런 젊은이들을 최근 자주 만납니다.   “나를 닮겠다고? 아닐세! 주님을 닮아가게!”라고 충고하고 축복하며 헤어집니다.   예수를 닮으셨습니까? 오늘 주님을 닮은 종들을 주님이 찾고 계십니다.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 달려서도 외치면서 마지막을 채우시는 예수를 닮은 일꾼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 한반도에서 온 열방을 향해 나아갈 예수 닮은 종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땅의 장래는 은과 금에 있지 않습니다.   경제에 있지 않습니다. 정치에 있지 않습니다.   이 땅의 장래와 미래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닮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CORNERSTONE MINISTRIES INTERNATIONAL  모퉁이돌선교회 [2019 . 11 카타콤 소식]  무익한 종 이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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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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