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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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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일 교수(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jpg

탁지일교수(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

 

 

 

사회적 위상과 공신력이 약화된 한국교회의 이단규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회의 납득할만한 이단규정에 대해, 이단들은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이단규정의 공정성을 운운하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과연 사회가 외면한 교회의 이단규정은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단규정 주체인 교회에게 문제가 있다면, 이단규정에도 문제가 있는 것인가?
 
사실 한국교회를 향한 한국사회의 날카로운 비판에 대해 일면 감출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적어도 무관심의 단계는 아니라는 안도의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교회의 사회적 순기능을 기억하는 한국사회는, 교회에 대해 사회윤리적인 면에서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 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경우, 사회는 교회를 향해 항상 냉정한 경고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보낸다.
 
소셜네트워크가 발달한 오늘날은 더욱 그렇다.
 
교회가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스스로의 개혁으로 응답하지 않으면, 교회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교회사의 변함없는 교훈이다.
 
이단규정의 ‘주체’인 교회가 사회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 반면, 그 ‘대상’인 이단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춘 채) 친사회적인 봉사활동을 펼치며 사회적 공신력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 오늘날의 형세이다.
 
교회의 이유 있는 이단규정에 대해, 이단들은 상식과 형평성을 내세우며 “너나 잘하세요!”라고 교회를 향해 비아냥거린다.
 
게다가 다종교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이단들의 사회봉사활동이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단지 사회봉사라는 행위와 그 결과에 관심을 갖는다.
 
아마도 종교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사회의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기독교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영남이나 제주 지역에서의 이단대처는, 주변 사회로부터 교회 내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무리 고상한 성경적 가르침이라고 하더라도 행함과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고, 반면 아무리 비성경적인 이단이라고 하더라도 이타적인 봉사활동이 사회에 노출될수록, 주변 사회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사회 정서이다.
 
교회가 정결한 모습으로 새로워지고 개혁되지 않으면, 이단대처의 명분과 영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객전도 현상은 한국교회 이단규정의 영향력, 공신력, 구속력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만약 교회가 ‘이기적’이고 이단이 ‘이타적’이라면, 교회의 이단 규정을 주변사회가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단지 교회의 역사가 더 길고, 양적으로 더 우세하다는 힘의 논리만을 가지고, 교회가 이단을 정죄할 수 있을까?
 
만약 교회가 정통이라는 우산아래에 몸을 피하고,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정통신앙의 이름으로 합리화 한다면, 이단규정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를 어려울 수 있다.
 
빛과 소금의 삶을 사는 교회만이, 종교적 다양성과 관용의 시대에 뿌리내리는 이단들의 도전에 당당하게 응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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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교회가 정죄한 이단, 사회가 외면한 교회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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