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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2.0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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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원장.jpg
무슬림선교훈련원(원장 이만석)
 
 
 
이슬람은 지금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슬림들 외에는 이슬람의 급성장을 반갑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어떤 나라든지 이슬람 인구가 늘어나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범죄가 늘어나고 테러가 발생하는 등 달갑지 않은 현상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9/11 테러만 생각해 봐도 어떻게 인간으로서 승객들이 가득 타고 있는 출근용 비행기를 납치해서 빌딩을 들이받아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을까?
 
이것이 전쟁 상황이라거나 또는 마피아 같은 갱단들의 앙갚음이라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혹시 이해하며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고 일 년에 한 달씩 금식하는 철저히 헌신된 종교인들이 평화로운 대도시에서 저지른 사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식의 틀이 깨져버리는 느낌이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윤리관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슬람의 윤리관은 인류 보편적인 기준과는 전혀 다르다.
 
이슬람 공동체를 움마(Ummah)라고 한다.
 
이슬람에서는 움마에 유익이 되는 행위는 선행이고 움마에 손해가 되는 행위는 악행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이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이다.
 
일반적으로 살인 간음 폭력 도둑질 거짓말 등의 행위는 악행이라고 보지만 이슬람의 윤리관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살인이나 폭력 등 강력한 범죄행위도 움마에 유익이 된다면 선행으로 장려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종교에는 최소한의 인류 보편적인 윤리가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인정한다면, 이슬람은 종교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슬람에는 도덕성이 없다는 말인가? 물론 이슬람에도 도둑질하면 손을 자르라(꾸란5:38)는 처벌과 간음한 여인은 가슴까지 땅에 묻고 돌로 쳐 죽여라(하디스)는 처형 등 윤리를 해친 자들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강력한 처벌 규정이 있기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적용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슬람권에서는 금요일마다 대규모 기도회가 열리는데 가끔은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가 설교를 한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대통령보다 높은 직위다.
 
필자가 이란에 있을 때 이슬람 최고 지도자가 설교를 하는 날은 일삼아서 듣곤 했다.
 
어느 날 금요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TV를 켰는데 그가 설교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가 막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리기에 수화기를 들었더니 어떤 여인이 울먹이면서 질문을 했다고 한다. “폭력이 좋은 일인가요? 나쁜 일인가요?”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더니 거두절미하고 정답만 알려 달라고 다그치더란다. 최소한 누가 누구를 때리는 폭력인지 말해보라고 했는데도 상황을 배제하고 제발 폭력 자체의 선악을 대답해 달라며 통곡을 하더란다. 아마 남편에게 억울하게 폭행을 당하고 속이 상해서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최고 지도자의 대답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폭력은 좋은 폭력도 있고 나쁜 폭력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슬람을 대항하는 폭력은 악한 폭력이지만 이슬람을 돕기 위한 폭력은 좋은 폭력이다”는 것이 그날 그의 설교의 핵심이었다.
   
폭력 뿐 아니라 살인도 마찬가지 기준이 적용된다.
 
꾸란에 보면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는 구절이 있기는 하지만 성경과는 다르게 표현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은 “살인하지 말라(출20:13)”라는 명령에 다른 조건을 붙이지 않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가 나쁜 것임을 나타내고 있지만 꾸란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는 사람을 살해하지 말라(꾸란17:33)”고 명하고 있다.
 
이슬람 학자들은 이것을 형법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상은 정당한 이유만 있으면 법정에 가지 않고 살해해도 된다는 것이 이슬람의 가르침이다.
 
이란에 있을 때 신문에서 “배교자는 법정에 끌고 갈 필요도 없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쳐 죽여라”는 칼럼을 읽고 놀랐던 일이 있다.
 
그러나 이란 사람들은 그 칼럼을 읽고도 아무도 놀라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무슬림들이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슬람의 율법이었기 때문이다.
      
꾸란을 보면 “4개월의 유예 기간이 지났는데도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교도들을 발견하면 어디서든지 살해하라(꾸란9:5)”고 명하고 있다. 이슬람 학자들은 이 구절이 전쟁터에서 적을 만나면 죽이라는 뜻이라고 미화시켜 설명한다.
 
하지만, 2절에서 4개월 동안의 여행을 허락하고 나서 4개월이 지나도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이라고 했으므로, 여행객들을 죽이라는 말이지 전쟁터에서 무장한 적군을 죽이라는 말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어디서 만나든지 죽이라는 것은 재판 절차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이슬람의 윤리는 전쟁 윤리다.
     
이슬람에는 세상을 평화의 집(Dar al salam)과 전쟁의 집(Dar al harb)의 두 부분으로 나누는 특별한 세계관이 있다.
 
그들의 세계관에 의하면 평화의 집은 무슬림들만이 살 수 있는 곳이고 이슬람 이외의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전쟁의 집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교도들과는 항상 전쟁상태라는 것이 이슬람의 세계관이다. 이교도들과의 전쟁을 지하드(Jihad)라고 하는데 이는 무슬림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다. 아래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를 보자.
       
 
아부 후라이라가 전하기를:
 어떤 사람이 알라의 사도(무함마드)를 찾아와서 “지하드와 (상급이) 동등한 행위를 알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런 행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그대는 무자헤딘(지하드 전사)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 모스크에 가서 금식하면서 쉬지 않고 이슬람식 기도를 드리며 전쟁이 끝나서 돌아올 때까지 금식과 이슬람식 기도를 멈추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물으셨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부 후라이라는 “무자헤딘(지하드 전사)에게는 그의 말이 긴 줄에 묶인 채 풀을 뜯어 먹는 동안에 밟는 발자국들에도 보상이 주어진다”고 덧붙였다.(Sahih Bukhari Hadith Volume 4, Book 52, Number 44)
    
지구상의 많은 종교들은 기도와 금식을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슬람만은 기도와 금식보다도 이교도들과의 전쟁에 참여하는 지하드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오랫동안 다정하게 지내던 이웃 마을 사람들이 이슬람을 믿지 않는다고 죽이러 가자는 지하드 전쟁에 보통 사람이라면 참여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꾸란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선자로 정죄하면서 큰 심판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꾸란9:38-39) 지하드에 참여를 꺼리는 사람은 배신자나 위선자로서 지옥의 자식들이라고 한다.(꾸란9:73) 따라서 진정한 무슬림들은 사사로운 정에 얽매어 알라의 명령인 지하드를 집행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슬람에서 지하드가 최고의 가치라면 이슬람의 윤리는 전쟁윤리라고 할 수 있다.
 
전쟁터에서는 일반적 윤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살인하지 말라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적을 속이지 않으면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말라는 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무함마드는 지하드 전쟁에서 승리하면 남자들은 다 죽이고 점령지 여인들을 병사들에게 전리품으로 나눠주었기 때문에 무슬림 병사들은 불륜이라는 개념 없이 그 여인들과 성욕을 채우곤 했다.
 
꾸란에는 이런 여인들을 “오른손이 소유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과의 동침을 허락하고 있다.(꾸란4:24)
 
유럽에서 무슬림들이 간음죄로 처벌받는 경우가 많은 것은 유럽 여인들을 점령지 여인들로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튀니지의 한 이슬람 성직자가 지하드 전사들을 위하여 여인들이 성(性)을 바치는 것은 여인들이 할 수 있는 결혼지하드(지하드 알 니카)라고 파트와(Fatwa:이슬람 칙령)를 선언하자 사우디의 여러 이슬람 학자들이 그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튀니지 내무부 장관의 말에 의하면 약 6000명의 여인들이 시리아에서 고생하는 이슬람 반군들을 위해 자신들의 몸을 바치려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 여인들은 전선에 들어가서 20~30명, 심지어 100명 정도의 지하드 용사들과 관계를 맺고 임신하여 돌아오는 일들이 많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하드를 위해서는 불륜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슬람의 전쟁윤리이다.
      
물론 이를 불륜으로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결혼 계약서를 쓰고 부부로서 성관계를 한다.
 
단지 그 결혼 계약이 2~3시간 유효한 시한부 계약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성윤리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무슬림들이 이렇게 편법을 이용하여 불륜을 허용하는 이유는 지하드라는 최고 가치 때문에 전쟁윤리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가 다른 종교나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미덕으로 장려하고 있지만 이슬람만은 비무슬림들과 친구로 사귀지 말라고 꾸란에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꾸란3:28, 꾸란4:138-145) 왜냐하면 전쟁시에 적과 친구가 되어서 내통하면 전쟁에 패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을 떠나면 죽이라는 것이 이슬람의 율법이다.
 
이는 전시에 탈영하면 사형에 처하라는 전쟁윤리를 적용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따라서 개종한 무슬림들은 자신의 개종을 공개적으로 알리기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이렇게 입에 담기도 부끄럽고 비상식적인 내용을 말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슬람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슬람의 윤리관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슬림들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대책을 세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슬림 형제자매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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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이슬람의 윤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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